모든 사물에는 내력이 있다. 그 내력의 진가가 공증된, 공신력 있는 기관의 인증서가 딸린 사물이 이른바 골동품일 게다. 그런데 나는 왠지 골동품의 내력에 잘 반해지지가 않는다. 내겐 너무 광대해서 그런가보다. 그 연세와 가격의 커다란 숫자에 잠깐 압도될 뿐이다.
나는 자질구레한 내력을 아는 사물에만 마음이 간다. 그것들은 대개 대량 생산품이니 객관적 아우라가 없다. 그런 사물에 때로 애니미즘 비슷한 것을 갖게 된다. 누구라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게다.
낡은 식탁이나 서랍장을 문밖에 버렸을 때, 수거되기를 기다리는 그 사물들이 비를 주룩주룩 맞고 있을 때, 그들을 저버린 가책으로 처연해지는. 툭하면 저절로 꺼지고 리모컨이 먹히지 않는 텔레비전에게 “너 같은 걸 텔레비전이라고 갖고 있는 내가 불쌍하다!”고 욕하는 사람도 애니미스트일 것이다.
내 방에서 가장 오래된 건 나다. 가장 새내기는 모래시계다. 세 개의 조그만 유리그릇에 각각 하양 파랑 노랑 모래가 담겨 있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모래가 떨어져 쌓인다. 그 모양이 꼭 모래시계를 내게 준 소설가 하성란 목소리 같다. 그러고 보니, 모래시계의 내력은 내게 하성란의 내력이기도 하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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