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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스타일 - 란제리룩 "옷 입는 거 깜박했냐고? 다 입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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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스타일 - 란제리룩 "옷 입는 거 깜박했냐고? 다 입은 거야!"

입력
2006.08.0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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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예! 속옷만 입고 어딜 나가니!” 외출 준비에서 빠지지 않는 모친과의 실랑이. 오늘은 캐미솔 톱 차림에 잔소리다. 속옷처럼 보이지만, 이건 속옷이 아니라고 몇 분에 걸쳐 설득해야 했다. 전지현도 입고, 이효리도 입고 다들 입는데 나라고 못 입을쏘냐.

인터넷에서 ‘스타들도 입었다’는 제목을 달고 ‘란제리룩’ 차림의 연예인 사진을 모아 편집한 블러그나 카페 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뿐 아니라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성들의 옷차림도 생중계 되는 란제리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깊게 파인 가슴 선과 가는 어깨 끈의 캐미솔 톱, 가슴을 강조하고 허리는 잘록하게 만든 코르셋 모양의 베스트, 화려한 레이스가 장식된 원피스, 옷을 입다 말고 뛰쳐나온 듯하다.

한여름 바캉스시즌과 함께 반짝 유행했던 란제리룩(lingerie look)의 인기가 올해는 어느 때보다 일찍 찾아왔다. ‘공주풍’ 패션처럼 여성스러운 의상이나 속옷을 장식했던 ‘레이스’가 블라우스, 스커트, 원피스 외에도 캐주얼 아이템인 티셔츠 등에 장식되면서 속옷이 겉옷이 되는 현상을 부추겼다. 티셔츠 위에 캐미솔 톱을 겹쳐 입는 ‘주객전도’패션에, 속옷처럼 보이는 겉옷이 아니라 이제는 진짜 속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도 이상하지 않다. 란제리 전문브랜드에서도 화려하게 디자인된 속옷을 겉옷처럼 입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을 정도니.

란제리룩은 브래지어, 슬립, 코르셋, 뷔스띠에, 페티코트, 런닝셔츠 모양을 본뜬 의상들로 피부가 비치는 얇은 소재, 레이스, 니트, 몸매를 드러내는 스판덱스 소재가 사용된다. 캐미솔 톱 외에 튜브 톱, 탱크 톱, 홀터넥 톱, 슬립원피스 등도 란제리룩 연출을 돕는다.

란제룩이라고 모두 섹시한 인상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란제리룩의 섹시함의 부담을 던 ‘베이비 돌(baby doll)’스타일의 유행도 란제리룩 인기에 한몫을 했다. 귀엽고 순진해 보이는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주는 베이비 돌 란제리들은 퍼프 소매, 리본, 프릴 장식 등이 더해진 짧은 길이의 미니원피스가 대표적인데 다른 아이템과 어울려 연출하기 쉽다는 장점 때문에 여성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속이 비치는 옷이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 속옷처럼 보이는 옷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900년대에는 스커트 밑으로 빠져 나온 레이스 속옷이 남성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 금기시되기도 했다. 속을 보이는 것 자체가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성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속살과 속옷은 철저히 감춰야 했었다.

이전까지 성적으로 개방적인 존재라는 의미에서 속살과 속옷이 드러낸 것과 달리 현대의 여성들의 노출은 사회진출과 관련이 깊다. 80년대 원뿔형으로 과장되게 부풀린 가슴 컵이 부착된 코르셋을 입고 콘서트 투어에 나섰던 팝가수 마돈나. 거리의 여자, 요부의 이미지를 파워풀한 여성성으로 변모시켰고, 90년대 중반에는 신체노출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감을 표현했다.

여성들은 속옷을 사랑한다. 성년이 되면 하이힐을 신고 싶어지는 것처럼 화려한 레이스장식이 된 속옷 한 벌쯤은 갖고 싶어진다. 여성들에게 속옷은 자랑하고 싶어도 함부로 내놓지 못했던 자신만의 ‘판타지’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속옷은 겉옷의 유행에 따랐고, 흰색, 살색 등 한눈에도 속옷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디자인과 색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겉옷과 같은 소재, 아니 속옷에 사용되는 소재들이 겉옷에 활용되면서 최근 들어 다양한 무늬와 원단, 색을 취한 속옷들이 겉으로 드러내도 좋을 정도로 다양하고 예뻐졌다.

이는 속옷의 겉옷화, 탈장르화의 경향 속에 속옷과 겉옷의 구별이 없어지고 서로의 기능과 디자인이 교류하면서 다양한 패션코드가 공존하는 현상을 말해주고 있다. 또 파티문화, 휴양지문화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됨에 따라 좀더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속옷의 활용도가 높아진 예라 할 수 있다.

속옷은 원래 은밀한 순간에 드러나는 옷이다. 그런 속옷을 겉옷으로 착용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을 공개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핸드폰, 디지털카메라 등으로 생산한 개인의 자료와 정보들이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와 개인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공개되는 세상에 속옷이 겉으로 뛰쳐나온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노출패션을 두고 ‘문란한 세대’라고 탓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당당히 자랑하는 자신감으로 인정하는 개방적 사고도 예쁜 속옷을 사 입고 또 자랑하고 싶은 여심을 북돋아 줬다. 물론, 가장 무서운 기성세대가 버티고 있는 현관 앞 실랑이는 계속되겠지만 말이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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