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고려대 화정체육관 개관식이 있었다. 체육관 개관 기념 행사로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찾아가는 음악회'가 성북구와 고려대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음악회는 고려대 가족과 성북구민들 7,0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청중의 절반 이상은 어린 학생들이었는데, 부모들과 함께 온 초등학생들도 많았다. 서울시민들에게 다가가려는 서울시향의 태도와 노력은 물론이고, 대학과 구청이 협력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이런 음악회 자리를 무료로 마련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정명훈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의 감동은 이런 이유로 더 크게 밀려왔다.
● 여가조차 '바빠야 하는' 사람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어린 학생들이 많았던 까닭에 장내는 아주 소란했다. 음악회 진행자가 작은 소음도 없어야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고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작은 웅성거림들이 없어지지 않았다. 뜻밖의 소음들 때문에 음악회 분위기가 나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아무나 올 수 있는 무료 음악회에다 특히 어린이들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불안감은 기우에 불과했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청중들의 태도는 상당히 양호했다. 연주 도중 자리를 뜨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조용함의 정도도 수준급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서양고전음악이란 얼마나 지겨운 것이며, 또 주위가 산만한 초등학생들에게 1시간 이상 아무 소리와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스런 일인가? 그렇지만 어린 학생들의 관람 수준은 서울시향의 연주 수준만큼이나 좋았다.
연주가 끝나고 정명훈씨가 학생들을 칭찬했다.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으면 머리도 좋아지고 공부도 잘 하게 된다는 덕담이었지만, 클래식 음악 감상은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고 가만히 있는 훈련이 된다는 점만으로도 교육적 효과가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공부의 하나라는 것은 옛부터 성현들이 누차 강조한 바 있지만, 오늘날의 교육에서는 거의 잊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희박한 것 같다.
'가만히 있는 것'을 좀 진지하게 말하면, 선이나 명상 혹은 정좌나 묵상이 된다. 불교에서는 특히 이런 공부를 중시하는데, 불교에서의 명상은 집중하는 명상과 분석하는 명상으로 나뉜다. 전자를 지(止)라고 하고, 후자를 관(觀)이라고 한다.
옛 선비들도 조용히 마음을 한 곳에 모으고 앉아 있는 공부를 책 읽는 공부만큼이나 중시했다. 추사 김정희도 자기 집의 주렴에 '하루의 절반은 독서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가만히 앉아 있는다(半日讀書 半日定座)'라는 구절을 적어두고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가만히 있질 못한다. 여가조차도 바빠야 하고, 휴식조차도 산만하게 이것저것 하면서 보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은 산만함을 조장하는 장비들로 중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핸드폰, 디카, MP3, 오락기, 컴퓨터 등이 이미 육체와 감각의 일부가 된 것 같고, 모든 생활 공간에는 유혹적이고 자극적인 볼거리와 놀거리들이 가득하다. 문자메시지를 하루에 백 통 이상씩 주고받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나 할는지 의심스럽다.
● 자기 자신과 만나보자
가만히 있는 것, 심심한 것은 오늘날 견딜 수 없는 것이나 나쁜 것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가만히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가만히 있을 줄 알고, 심심한 것과 친할 줄 알아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양하 선생은 '나무는 덕이 있다'고 했다. 그 까닭은 나무란 한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남호 문학평론가ㆍ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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