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교육부총리가 결국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임명 13일만에 여론의 압력으로 자리를 떠나게 됐으니 그 자신은 물론 그를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도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야당 뿐 아니라 여당까지 반대하는 인사를 밀어부쳤다가 이런 일을 당한 대통령은 할 말을 잃고 있다.
20% 내외의 낮은 지지율, 5ㆍ31 지방선거 참패, 7ㆍ27 국회의원 재보선 완패 등으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의 처지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당과의 관계는 동지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악화되고, 대통령의 권위와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레임덕이 가속화할 위험이 있다.
● 겁낼 것은 레임덕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반이나 남은 것을 겁내고 있다. 지난 3년반 동안 '노무현식 통치'가 빚어내는 갈등과 혼란을 겪어온 사람들은 앞으로 1년반 동안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머리를 흔들고 있다. 우리가 어쩌다가 저렇게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고집대로 밀고 가는 대통령을 갖게 되었는지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오늘의 민심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임기가 1년반이나 남아있는 것처럼 다행한 일이 없다. 1년반이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대통령은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당장 대통령은 교육부총리와 법무장관을 임명해야 한다. 폭넓게 의견을 들으면서 최선의 인물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폭발 직전인 국민의 불만이 상당부분 누그러질 것이다. 국민의 불만이 줄고 지지율이 올라가는 만큼 대통령의 힘이 생길 것이다.
레임덕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레임덕이 아무리 심해도 임기가 남아있는 한 대통령의 책임과 권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레임덕이 심할수록 대통령은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의연하게 정도를 가야 한다. 초조해져서 안간힘을 쓸수록 초라해질 뿐이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단풍이 들면 낙엽이 지듯이 임기 말에 권력 누수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에 비하면 노 대통령의 레임덕은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 아들들의 부정사건 연루로 레임덕이 가속화했지만 노 대통령은 자신의 실정으로 레임덕이 앞당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노 대통령이 지금 두려워할 것은 레임덕이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과 기질이다. 승부가 아닌 일에 승부를 걸고, 잘못을 지적받으면 반발하고, 끝내 자신의 고집대로 밀어부치는 스타일을 버리지 않는다면 멀어진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 그간의 인생 역정에서는 그런 성격이 나름대로 힘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위험한 기질이다.
노 대통령의 위기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상당부분 자신의 내부에서 온 것이다. 그동안 노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서는 '코드 인사, 보은 인사, 오기 인사, 돌려막기 인사' 라는 비난이 빗발쳤으나 귀기울이지 않았다. 비난이 높을수록 그의 오기는 더 강해졌다. 이번 사태는 '노무현식 인사'의 온갖 폐단을 치명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노 대통령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다. 그는 보수언론이나 기득권층의 반대가 자신을 위기에 빠트린 유일한 이유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 오기 버리고 변화 보여라
대통령의 인사권은 국민이 그에게 준 것이다. 교육부총리와 법무장관 인사에서 그 점을 마음에 새기고, 그 인사를 통해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가 변화하지 못하면 1년반 후 자신을 지겨워하는 국민과 이별하게 될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나 그를 위해서나 그런 가슴아픈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국민의 마음을 잃은 불행한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를 빨리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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