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 갈등 요인으로 급부상했던 '김병준 파문'이 2일 자진 사퇴로 마무리됐지만, 향후 정국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후임 법무장관 인선을 비롯해 당청 갈등 요소들이 산적해 있는데다,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야권의 공세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의 자진 사퇴에는 국정 운영에 부담을 느낀 청와대의 의중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해임 건의'라는 배수진을 치고 나선 열린우리당과 총리실에게 퇴로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여기엔 '당정 대(對) 청와대'의 대립구도가 격화할 경우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당청 관계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김 부총리의 사퇴의 변에서도 이 점을 읽을 수 있다.
일단 김 부총리 문제는 전면적인 당청 갈등의 소재로 비화하지 않고 비교적 연착륙하게 됐다. 그러나 "앞으로 더 걱정"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당장 후임 법무장관 인선부터가 난제다.
우리당은 이미 국민 정서를 이유로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 카드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했지만, 청와대측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는 데 대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당이 제안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재계와의 뉴딜(New Deal) 정책이나 한미 FTA 협상에 대한 당청간 온도 차이도 확연하다. 우리당 핵심 당직자는 "지금부터는 지뢰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우리당이 '힘 조절'을 함으로써 당청 갈등이 표면화하는 경우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 김근태 의장이 당 우위의 당정청 관계에 무게를 두면서도 세부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선 공개적인 힘겨루기보다 물밑 조율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당 고위 관계자는 "김 의장과 한명숙 총리,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여권 핵심부의 비공개 채널이 상시적으로 가동될 경우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치권이 요동치는 시점이 빨라질 개연성도 적지 않다. 우선 우리당 내에 청와대와의 대립각을 분명히 하는 데서 활로를 찾으려는 의견이 상당한 게 현실이다. 또 김 의장측도 "외교안보 현안 외에는 당의 주도권이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핵심 측근)는 생각이 강하다. 김 부총리 사퇴를 계기로 청와대 내부에서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와 방식을 고집하는 강경론이 힘을 얻을 경우에도 여권 내부의 파열음이 당장이라도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노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한 뒤 후임 법무장관을 누구로 지명하느냐가 향후 정국 흐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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