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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문진(文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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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문진(文鎭)

입력
2006.08.0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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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딱 거머쥘 만한 크기의 사물은 어쩐지 내 마음을 끈다. 그래서 열대조개껍질, 모래시계, 미니어처 로제타석 등을 선물로 받았을 때 기뻤다. 그것들은 내 책상에 있다. 또 묵직한 은제품도 있는데,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그 물건은 용도를 모르겠다. 바닥 양끝이 뚫려 있고 아랫단과 윗단에 빙 둘러 무궁화로 짐작되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십여 년 전, 프레스센터 테이블에 있는 것을 내가 탐내니까 누군가 내 가방에 넣어준 것이다. 주인이 이제라도 돌려받겠다면 양도할 뜻이 있다. 단 뭣에 쓰는 물건인지 알려주면 고맙겠다. 명함꽂이? 메모함?

‘어쩐지’라고 했지만, 아마 문진(文鎭)으로 쓰기 알맞다는 점에 끌렸을 것이다. 예전에 원고지를 쓸 때나 타자기를 쓸 때는 종이가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뭔가 눌러둘 것이 필요했다.

선풍기라도 틀고 있거나 활짝 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원고지들이 흩날려 정신을 흐트러뜨렸다. 그러면 쩔쩔매다 손에 잡히는 대로 사전을 올려놓기도 했고 잉크병을 올려놓기도 했다. 지금은 컴퓨터를 사용하니까 문진이 필요 없다. 그래도 예쁜 문진감이다 싶은 물건에 여전히 끌리고, 그래서 그런 물건이 자꾸 모인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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