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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대디' 싸움짱으로 돌아온 왕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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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대디' 싸움짱으로 돌아온 왕의 남자

입력
2006.08.0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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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보고 싶거나 무작정 보기 싫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단지 이준기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영화 ‘왕의 남자’로 크로스섹슈얼 열풍을 이끌며 2006년 문화지형도를 바꿔버린 이준기의 차기작 ‘플라이대디’는 그러나 ‘이준기 신드롬’을 등에 업고 대충 만든 ‘날림 영화’는 아니다. 열아홉 소년과 서른아홉 아저씨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다소 유치하고 작위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슬금슬금 관객 품으로 파고들며 잔잔하게 파문의 지름을 넓힌다. 여름 영화의 요건인 버라이어티나 스펙터클은 없지만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잇는 소품 명작으로 박수를 쳐줄 만한 작품이다.

재일교포 3세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Fly, Daddy, Fly’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아빠가 없는 ‘싸움짱’ 소년과 무력하고 소심한 가장이 ‘싸움의 기술’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부장 승진을 앞둔 대기업 과장 장가필(이문식)은 가족만 바라보며 성실하게 살아온 만년 샐러리맨. 하지만 딸을 폭행한 청솔고 복싱부 챔피언에게 말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물러서면서 자괴감에 빠진다. 강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청솔고 최고의 싸움 고수 고승석(이준기)을 찾아간 가필은 딸을 지켜주고 싶다는 눈물 어린 호소로 승석의 제자가 돼 40일간 맹훈련을 받는다.

영화는 어린 스승과 나이든 제자의 관계 전복을 통해 다양한 웃음 코드를 제조해내며 이문식을 캐스팅한 본전을 톡톡히 뽑아낸다. 짧은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아크로바틱을 선보인 이문식은 15㎏을 늘렸다 뺐다 하며 ‘만삭’의 배에 ‘王’(왕)자를 새기기까지의 훈련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는 투혼을 발휘한다.

세상이 모두 적이라고 믿는 외로운 소년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이문식의 어수룩한 연기는, 이 대기만성의 배우가 왜 잠시도 쉬지 않고 TV와 스크린에 출몰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준기의 매력은 그가 경계에 섰을 때 나온다. 남자와 여자의 경계선 위에서 1,200만 관객의 마음을 건드렸던 것처럼, 소년과 남자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준기의 파닥파닥한 청신함은 ‘석류를 좋아하지 않는 필부필부’들의 반감도 녹여버릴 만하다. 흘러내린 앞머리로 창틀에 앉아 체 게바라 평전을 읽는 모습에선 소녀들의 로망을 자극하려는 노골적인 ‘의지’가 읽히지만 관객과 배우의 이 싸움에서 대부분의 관객은 이준기에게 지고 만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어쩌면 이준기나 이문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플라이대디’의 진짜 주인공은 스크린을 가득 메운 멀티스포츠 브랜드 SPRIS의 ‘EVERLAST’. 벽이고 천장이고 바닥이고 간에,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의 등판이고 가슴이고 손목이고 간에, 잔뜩 도배된 저 브랜드 때문에 두시간 남짓 영화를 보고 나오면 눈 앞에 브랜드 영문 로고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환각이 인다. 간접광고가 얼마만큼 뻔뻔할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준다. 3일 개봉. 12세.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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