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5년 전인 1981년 8월 인류사를 또 한번 바꾸는 기계가 선 보였다. IBM이 내놓은 PC 5150이다. 이보다 35년 전 등장한 첫 컴퓨터 에니악(ENIAC)은 진공관 1만 8,000개로 구성돼 30톤 무게에 길이만 25㎙에 달했다.
웬만한 건물 크기를 IBM은 딱 요즘의 데스크 탑으로 줄여 놓았다. 이런 크기의 컴퓨터로는 앞서 75년 MIT의 알테어, 76년 인텔의 애플Ⅰ, 77년 애플Ⅱ가 있었으나 IBM5150은 개방형 운영체계를 채택, 단숨에 시장을 석권하며 PC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원래의 마이크로컴퓨터란 용어를 PC로 바꿔 버린 것도 이 기종이었다.
▦ 포탄 탄도계산 목적으로 개발된 에니악을 비롯해 이전의 컴퓨터는 엄청난 크기와 비용으로 인해 군용, 대기업용으로나 국한해 활용됐다. IBM5150으로 촉발된 고기능PC 개발경쟁에다 90년대 초 상용인터넷의 보급으로 누구나 무제한의 정보접근 및 유통이 가능해졌다.
산업화시대를 이어 이른바 정보화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 것이다. 인류사의 획기적 대전환을 예감한 시사잡지 '타임'은 IBM5150 출시 이듬해인 82년에는 매년 선정해온 '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 대신 PC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로 바꾸어 선정했다.
▦ IBM은 5150 광고에서 '현대의 도구(A Tool of Modern Times)'라는 카피를 달았다. 30년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Modern Times)'를 차용한 광고는 그러나 모던 타임스가 현대문명의 그늘을 고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채플린은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밤낮없이 나사만 조이다 정신질환자로 전락하는 인물을 통해 기술문명의 냉혹성과 그 속에서 소외돼가는 인간을 그려냈다. 주인공이 고아소녀와 함께 석양의 지평선을 향해 뒤뚱뒤뚱 걸어가는 끝 장면은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통렬한 메타포였다.
▦ PC 역시 광범위한 일상적 유용성과 폭발적인 산업적 효과 이면에 짙은 그림자를 수반하고 있다. 사고는 경박해지고, 인간성은 파편화하고 있으며, 심각한 정보격차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등의 경고신호가 끊임없이 울려대고 있다.
올들어 부쩍 PC의 종말을 예고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모바일 컴퓨터로의 기술적 진화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런 문제의 해결과는 별 관련이 없다. 기술발달의 속도에 취해 정작 중요한 '인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본질적 문제를 PC 25년을 맞아 새삼 생각케 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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