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처음으로 절반 이상인 52.7%를 차지했다. 아파트 거주 비율은 계속 가파르게 상승할 게 틀림없다. 2000년에 새로 지어진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85%를 넘었으며,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놀랍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땅 좁고 인구 많은 나라'에서 당연하다고 본다. 다른 한쪽에선 인구가 줄어 문을 닫는 학교들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나는 최근 '강남의 역사'라는 책을 쓰면서 그 점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왜 신문방송학자가 엉뚱하게 '강남'과 '아파트'를 연구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만, 나의 주요 관심사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여론형성 메커니즘이다. 즉, 한국의 아파트 문화 연구와 여론 연구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아파트와 여론 형성
한국은 매우 높은 '중앙ㆍ상층 지향성'을 갖고 있는 나라다. 시련과 고난으로 점철된 근ㆍ현대를 거치면서 전통 귀족계급이 몰락했거나 크게 쇠락한 덕분에 한국인은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는 적잖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원동력이 되었다.
남이 하는 건 똑같이 따라서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독특한 평등주의는 한국의 영원한 자산이다. 다만 문제는 적정 수준의 만족을 모르고 늘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내달리고자 하기 때문에 삶이 극도로 피곤하고 그래서 행복도가 매우 낮다는 점일 게다.
아파트 거주율 80%로 아파트 문화의 선두주자로 군림해온 강남이 늘 한국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에서부터 '타워팰리스 신화'에 이르기까지 지난 40년간 강남은 한국사회의 발전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 되었다. '강남 헤게모니'가 형성되기 시작한 80년대 이래로 강남은 선망과 질시의 대상인 동시에 모든 라이프스타일과 유행의 진원지가 되었다.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구조로 되풀이되는 걸 가리키는 '프랙털' 개념은 강남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효하다. 전국의 모든 도시엔 고가 아파트가 밀집된 작은 '강남'들이 있다. 남들과의 구별짓기를 위한 처절한 투쟁은 서울 강남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더 주거지의 위계질서를 뚜렷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아파트형 고밀도 거주방식은 대형업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경제적 집중을 가져왔고, 타인 행동의 관찰과 모방을 쉽게 만들어 획일적 문화를 부추겼다.
높은 아파트 거주율은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만 유리하게 작용한 게 아니다. 최근의 '아파트 부녀회' 논란이 잘 말해주듯이, 아파트는 거주자들의 단결과 전염력을 높이는 데에도 놀라운 효능을 보여주었다. 정보 공유에서부터 태극기 게양에 이르기까지 아파트는 '단절'과 '자폐'라는 외양적 이미지와는 달리 오히려 가구별 '홀로서기'를 어렵게 만드는 묘한 결과를 초래했다.
● 정권도 '강남 분열증' 겪어
이런 주거 구조와 행태가 여론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걸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겠다.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 중의 하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강남을 향한 질주'와 '이건 아니다' 사이에서 분열증을 겪음으로써 여론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런 분열증은 노무현 정권의 인사들이 강남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개혁적' 발언을 자주 쏟아내면서도 자신들은 억대의 연봉을 탁월한 재테크로 불려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강남이 바로 자신의 얼굴이기도 하다는 걸 모르는 불감증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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