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위가 1일 발표한 KAL 858기 폭파사건 중간 조사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폭파범 김현희가 북한 출신임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그간 김현희에 대해선 “북한 출신이 아닌 안기부 공작원”이라는 등 각종 의혹과 설이 난무했었다.
의혹의 한 가운데엔 1972년 11월 남북조절위원회 당시 남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준 북측 화동 중에 김현희가 있었다는 당시 안기부의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안기부가 제시한 사진 속 화동과 김현희의 귀 모양이 달라 오히려 의혹만 키웠었다.
하지만 진실위는 당시 일본 공산당 기관지 평양 특파원이 보관 중이던 사진 36장을 입수, 실제로 김현희가 그 곳에 있었음을 확인했다. 진실위는 “북한이 KAL 사건은 남한 자작극이라며 제시한 화동 사진이 오히려 변조된 것으로 판단된다”며“사건 당시 안기부의 발표는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려다 빚어진 착오”라고 밝혔다.
사건 직후 음독 자살한 또 다른 폭파범 김승일은 1984년 공작원 해외 적응훈련의 일환으로 서울에 잠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하지만 김현희를 직접 조사하는 데 실패함에 따라 많은 의혹들이 미궁으로 남게 됐다. 폭파 사건 직후 김현희 등이 곧장 달아나지 않고 이틀간 바레인에 머문 행적을 둘러싼 의혹은 이번에도 명쾌하게 해명되지 못했다. “김현희를 직접 면담해봐야 할 문제”라고 진실위는 밝혔다.
당시 안기부가 밝힌 폭발물 양인 C4 350g과 액체 폭약 700cc로는 비행기를 폭발시킬 수 없다는 의혹 제기도 있었다. 진실위는 이에 대해 폭발물 양은 김현희의 진술에 근거해 당시 안기부가 임의로 추정한 것이라며 “폭탄 관련 의혹도 김현희를 면담하거나 동체를 찾아내야 풀어질 문제”라고 여운을 남겼다.
진실위가 KAL 858기의 동체 일부로 추정되는 인공 조형물을 미얀마 양곤 동남방 300㎞ 지점에서 발견한 점은 이번 조사의 성과이다. 지금까지 일부 잔해는 발견됐지만 KAL기의 동체는 발견되지 않아 각종 의혹의 진원지가 됐었다. 진실위는 5월 현지 탐사를 통해 이를 발견했다며 10월 추가 잠수 조사를 할 계획이다. 실제 KAL기 동체로 드러날 경우 사건의 실체 규명에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건의 실체 여부와는 무관하게 당시 정권이 대통령 선거에 사건을 이용했다는 의혹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작성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 계획’ 문건, ‘KAL기 폭파사건 관련 북괴만행 규탄 궐기행사 개최계획’문건 등이 그 근거다. 또 김현희를 대선 하루 전 날인 12월 15일까지 압송해 오기 위해 안기부와 외무부가 외교적으로 노력한 흔적도 당시 전문을 통해 확인됐다.
■ KAL기 폭파 사건
승객 85명 등 115명을 태운 KAL 858기가 1987년 11월 28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해 아부다비를 거쳐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공중 폭발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사건 주범 김현희를 대통령 선거일 바로 전날인 12월 15일 압송해 오면서 대선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선거 운동에 활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정치적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또 블랙박스가 발견되지 않아 폭발 원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김현희의 어린 시절 사진을 둘러싼 날조 의혹 등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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