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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근태·손학규…희망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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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근태·손학규…희망 읽기

입력
2006.08.0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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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을 앞둔 정신병 환자에게 의사가 마지막 테스트를 했다. 당신은 쥡니까? 환자는 펄쩍 뛰었다. 미쳤어요? 멀쩡한 사람 보고 쥐라니. 의사는 만족했다. 바로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됐습니다. 이제 저기 고양이가 앉아있는 문턱을 넘어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자, 안녕히 가세요. 그러자 환자는 갑자기 해쓱해져서 머뭇거렸다. 왜 그러시죠? 의사가 물었다. 더듬거리는 환자의 말. 근데, 고양이도 내가 이제 더 이상 쥐가 아니라는 걸 알까요?

오래 전에 나돌던 우스개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서민경제회복'을 변화의 기치로 내걸었을 때 새삼 이 우스개가 생각났다.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라는 그의 말(사회비평집 '희망의 근거' 중)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기왕 한 걸음 내딛으려면 그냥 '경제회복'으로 확실하게 포장하지 구태여 '서민'을 간판으로 내걸 건 뭔가. 그래도 교조적 진보세력은 결국 '배반자'란 낙인을 찍을 테고, '나도 중산층'이라는 거품의식 속에서 정치성향을 나타내는 70% 이상의 건너편 국민들도 선뜻 환영하지 않을 이 난해한 '절충'을 그는 왜 포기하지 않는지 안쓰러웠다.

우려대로 요즘 김 의장의 '서민경제회복' 드라이브는 양측의 난타(亂打) 속에 협살(挾殺)의 위기를 맞고 있다. 민생회복의 기본방향으로 사교육비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며, 주거안정을 꾀한다는 '교식주(敎食住) 원칙'에 따라 맨 먼저 현 부동산정책 고수입장을 밝혔을 때만 해도 그나마 덜했다. 그러나 최근 일자리 창출과 연계해 '제계와의 뉴딜'을 제안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칼질'이 난무하고 있는 중이다.

거칠게 말해 '뉴딜'은 기업들에게 투자를 촉진할 수 있도록 친기업적 인센티브를 줄 테니, 신규 투자와 함께 일자리도 늘려달라는 얘기다. 한쪽에서는 당장 '김근태 이 XX, X나라당에나 가서 붙어 먹어라'는 욕설이 터져 나온다. 반면, 다른 편에서는 '정부도 외면할 느닷없는 좌충우돌식 정책'이라느니, '진정 변화하겠다면 먼저 투자여건을 만들어 시장이 작동하게 한 뒤 기업에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매도와 빈정거림이 넘쳐 나고 있다.

하지만 좀 따져 보고 싶다. 김 의장의 변화시도를 반드시 만신창이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미 국민국가 단위의 경제체제가 무색해진 글로벌 경쟁시대다. 이 마당에 우리 기업의 경영안정과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제한적인 '당근'을 주자는 게 그렇게 지독한 배반인가?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일자리를 늘리자는 게 재벌에 대한 '백기투항'인가?

반대로 여전히 '서민' 간판을 내리지 않았으니, 아무리 변화를 얘기해도 '위장투항'이고 '얼치기 변신'에 불과한 것인가? '이태백'과 '사오정'이 넘치는 명백한 양극화 추세 속에서 기업에 최소한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시장 파괴 행위'인가? 모두들 입만 열면 기업을 살리자고, 일자리를 늘리자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는가?

냉소와 절망이 장마철의 먹장구름처럼 두터운 때문인지, 요즘은 사람에게서 희망을 읽고 싶다. 이미지 정치라고 빈정거려도, 탄광과 뙤약볕 아래 배추밭에서 흘리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굵은 땀방울에서 진심을 읽는다. 협살 위협 속에서 힘겹게 나아가는 김근태 의장의 진땀 속에서 진지한 모색(摸索)의 안간힘을 느낀다. 이들의 진심과 모색에서 내일의 희망을 일굴 최대공약수를 찾고 싶다.

장인철 정치부 차장대우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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