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사퇴냐, 해임이냐. 아니면 한 번 버티기를 시도해 볼 것인가.’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거취 문제를 놓고 여권 수뇌부의 막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일 오후로 예상됐던 한명숙 총리의 입장 표명이 늦춰졌고, 열린우리당에선 공개적으로 김 부총리의 사퇴를 촉구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등 여권 내부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1일 오전까지만 해도 한 총리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됐던 김 부총리의 거취 문제는 이날 오후 들어 기류가 바뀌었다. 총리실에서 “대통령에게 김 부총리의 거취에 관해 건의를 하겠지만 여론을 수렴하고 협의하기 위해서는 하루나 이틀 정도가 걸릴 것”(김석환 공보수석)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한 총리가 입장 표명을 미룬 데에는 무엇보다 국회 교육위 차원의 청문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의혹을 놓고 김 부총리와 의원들 사이에 거친 설전이 오갔지만 김 부총리의 명백한 잘못이 확인되진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청문회 도중 지금까지와는 달리 김 부총리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도 일부 감지됐고, 청와대도 논평을 통해 “의혹 해소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내놓자 한 총리는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한 총리의 선택은 ‘시간 벌기’로 보인다. 외견상 청와대 논평으로 드러난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여론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여기엔 청와대의 입장이 다소 모호해진 상황에서 해임 건의 카드를 꺼내들기가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하지만 한 총리가 결국은 김 부총리가 자진사퇴하지 않을 경우 해임을 건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총리가 김 부총리 문제를 사실관계 규명 차원을 넘어선 정치적 결단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유임을 원한다면 건의하지 않고 그냥 두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총리의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 부총리에게 말미를 더 준 뒤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열린우리당에서 공개적으로 김 부총리의 사퇴를 촉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한 것도 상당한 변수다. 물밑 조율에 주력했던 당 지도부에서조차 김 부총리가 유임으로 결론날 경우 파국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당으로선 여기서 물러설 경우 민심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는 절박감이 큰 상황이다.
이 점에선 한 총리와 김근태 의장이 사실상 같은 배를 탄 입장이다. 한 총리로서는 여권 내 조율사로서 명실상부한 책임총리로서의 입지를 굳히느냐가 달려 있고, 당내 강경파의 비판을 감수하며 당청갈등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노력해온 김 의장도 여기서 물러설 경우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여당과 총리실이 청와대를 상대로 양동작전을 벌이는 형국이 된 터라 김 부총리가 자진 사퇴하거나 한 총리가 해임을 건의하는 것 말고는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묘책이 없어 보인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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