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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반전이면 다야? 이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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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반전이면 다야? 이건 아니잖아~"

입력
2006.08.0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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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알고 보니…’의 덫에 빠졌다. ‘알고 보니’ 가장 착한 사람이 범인이고, ‘알고 보니’ 가장 시답잖게 보이는 조연이 악령이다.

귀신에 시달리는 꼬마를 치료하는 심령치료사가 ‘알고 보니’ 귀신이었다는 ‘식스센스’의 반전(反轉)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반전 영화라는 특정 장르가 생겼을 정도로 반전은 중요한 영화적 장치가 됐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반전의 전제인 ‘치밀한 복선’은 무시한 채 스릴러나 호러뿐 아니라 멜로에까지 반전을 끌어들일 만큼 병적으로 ‘한판 뒤집기’에 올인하고 있다. 전체 서사의 논리적 정합성이나 개연성은 고려치 않은 채 반전을 위한 억지 반전을 고집하며 이야기의 만듦새를 망가뜨리고 있는 ‘반전 강박증’은 한국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병리 현상임에 틀림없다.

3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스승의 은혜’는 한국영화의 ‘반전 강박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체벌을 당한 학생들이 성인이 돼 스승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스승의 은혜’는 교육 현장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교훈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말의 반전으로 인해 이 모든 사회적 메시지가 어불성설이 되고 만다.

이제껏 구축해온 의미의 구조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며 이야기를 재조립하는 게 반전의 소명이건만, ‘스승의 은혜’는 파괴에만 골몰할 뿐 재구성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가짜 시체를 쓰지 않고 리얼하게 찍은 시신 장면, 피와 살이 튀는 잔혹한 영상 등 슬래셔 무비로는 근래 보기 드문 높은 성취도를 보이지만, 마땅히 그럴 것이라고 짐작했던 전제와 가정들이 뒤집힌 이후 이야기의 논리 구조가 무너지면서 남는 것은 ‘허무 개그’의 여운뿐이다.

관객의 예상을 뒤엎어야 한다는 지상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주인공 대신 조연을 십분 활용하는 것은 반전 영화의 전형적인 수법. 조연 중에서도 가장 착하고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 범인이거나 귀신이라는 것은 이젠 모르고 봐도 유추할 수 있는 반전 영화의 뻔한 공식이 됐다.

‘아랑’은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어리버리한 신참 형사 이동욱이 범인이었고, ‘아파트’에서는 이웃들의 고초에 시달리는 착한 장애인 소녀 장희진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귀신이었다. 범죄 추리극 ‘모노폴리’는 김성수가 양동근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처럼 보이는 내용이 영화의 90%를 차지한다. 하지만 막판 반전으로 모든 것이 양동근의 시나리오였고, 김성수는 양동근이 만들어낸 가상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수많은 영화를 통해 반전의 법칙을 학습한 관객들에겐 ‘짐작했던 대로’이거나 ‘너무 억지스럽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관객과 두뇌게임을 해야 하는 스릴러나 호러 영화야 반전이 필수 요소니 어쩔 수 없다지만, 멜로에까지 반전을 무차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관객의 부아를 돋운다. ‘연리지’는 불치병에 걸린 최지우와 애타는 사랑을 나누던 조한선이 ‘알고 보니’ 본인 역시 불치병이었다는 설정으로 관객을 황당하게 했고, ‘도마뱀’은 강혜정이 조승우의 사랑을 피해 자꾸만 도망쳤던 이유가 에이즈에 걸렸기 때문임이 밝혀지면서부터 난데없는 ‘허무맹랑 최루극’으로 돌변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좋은 반전은 관객들에게 놓쳤던 복선들의 의미를 깨닫게 함으로써 허를 찔린 느낌을 주는 데 반해 요즘 한국영화들은 ‘이거 뭐야’ 싶은 허망한 느낌을 주는 게 대부분”이라며 “‘왕의 남자’나 ‘괴물’ 같은 웰메이드 영화들이 사건이 펼쳐지는 과정을 통해 관객을 감동시킨 것처럼 이제 반전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무리한 반전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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