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양 주변의 울창한 산들은 '금산(禁山)'이라고 해서 벌채와 토석 채취 등 일체의 개발행위를 엄격히 금하였다. 오래된 나무들을 보호해 유사시 전선(戰船)을 만들거나 왕실 건축에 쓰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금산 훼손에 대한 처벌은 매우 가혹했다.
세조 때는 나무 한 두 그루를 벤 자에 대해 곤장 100대를 치고, 열 그루 이상을 베었으면 곤장과 함께 온 집안을 변방으로 이주시켰다. 베어낸 만큼 다시 심도록 한 기록도 있다. 금산을 조선시대 그린벨트로 비유하는 이유는 엄격한 보전정신 때문이다.
▦ 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지정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는 전 국토의 5.4%인 5,397.1㎢에 달했다. 런던 외곽에 폭 10마일의 고리모양 녹지대를 설정한 영국이 모델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린벨트 규정을 결재할 때 표지에 "건설부 장관이 개정할 수 있으되 반드시 대통령의 결재를 득할 것"이라고 써넣었다.
그런 강력한 의지 덕분에 그린벨트는 엄청난 개발압력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보호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이 있지만 외국에서는 환경친화적인 도시정책의 모델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 개발독재자인 박정희도 끝까지 지켜온 것을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개발을 명분으로 함부로 해제, 훼손하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훼손 정도도 갈수록 노골적이다. 처음에는 녹지기능을 상실한 지역만 선별해 예외적으로 해제한다고 하더니 야금야금 해제지역이 넓어지고 이제는 아예 그린벨트마다 대규모 임대주택단지를 지으려 한다.
중앙도시계획위원회가 최근 서울 강남구 세곡동과 강동구 상일ㆍ하일동 일대 그린벨트 해제 및 국민임대아파트 건설계획에 대해 부적합 결정을 내린 것은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박수 받을 일이다.
▦ 두 지역은 서울 강남구와 성남시 사이, 강동구와 하남시 사이의 산림이 우거진 녹지축을 형성하고 있어 보전가치가 높다는 것이 위원회가 개발을 허가하지 않은 이유다. 이에 앞서 감사원은 정부의 임대주택 건설 목표량이 수도권의 수요량보다 3~5배나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요도 없는 주택을 지으려고 '도시의 허파'라는 그린벨트를 마구 훼손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한 쪽에서는 멀쩡한 그린벨트를 훼손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새로운 녹지공간을 건설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은 이제 제발 그만두기를 바란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