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진입로에 '침수 위험, 진입 금지' 표지가 걸린 밧줄이 쳐졌다. 내려다보니 보도 가까이 개천이 불어 있었지만 걸을 만했다. '그냥 넘어가?' 망설이다, 이때 아니면 언제 청계천 윗길을 걸으랴, 경고를 따르기로 했다.
위에서 개천을 조망하며 걷는 맛도 괜찮았다. 한쪽에선 개천이 폭포소리를 지르며 흐르고 다른 한쪽에선 차들이 물보라를 뿌리며 모터보트처럼 지나가고, 우산 위에선 빗소리가 와글거렸다.
청계천에는 다리가 많다. 장통교를 지날 때, 삼일교 쪽에서 비장한 운동가 소리가 들려왔다. 시위가 있나보다 생각했는데, 전경도 전경차도 시위대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노란색 봉고차 한 대가 길가에 서, 확성기로 운동가를 틀어놓고 있었다.
옆구리에 '전국철거민협회'라고 적힌 차였다. 빗속의 1차시위(1車示威)는, 청계천 복원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음을 외로이 항변하고 있었다. 나는 복원된 청계천을 즐겼다! 떳떳치 못한 기분으로 수표교를 향해 걸을 때, 새빨간 이층버스가 지나갔다. '열린 청계/ 푸른 미래'라고 적힌 서울시티투어버스였다.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세운교에서 굽어보니, 보도를 삼킨 개천이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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