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냐, 70년이냐.”
일본 문화계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문학과 미술, 음악 등 영화를 제외한 분야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으로 설정하고 있는 일본도 미국처럼 70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폭제는 지난 5월 제기된 일명 ‘로마의 휴일 소송’이다. 일본의 한 업체는 올 들어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1953년 개봉)을 DVD로 대량 제작해 싼 가격으로 판매했다. 그러자 그 동안 이 영화의 저작권을 관리해 온 미국 파라마운트사가 이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 바로 ‘로마의 휴일 소송’이다.
이 소송은 법률 해석의 차이 때문에 복잡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3년 저작권법을 개정, 2004년 1월부터 영화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70년으로 연장했다.
문제는 이 법의 적용 연도인데, 일본 문화청은 보호기간이 70년으로 연장된 신법의 적용은 1953년 개봉 영화까지 해당된다는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법 시행 시점인 ‘2004년 1월 1일 0시’가 ‘2003년 12월 31일 밤 12시’와 동일하다는 논리였다. 파라마운트사의 소송 제기는 이 같은 견해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도쿄지법은 7월 11일의 1심 판결에서 문화청의 견해를 일축하고, 파라마운트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새 법의 적용 시점을 ‘2004년 1월 1일 0시’로 보고 54년 공개된 영화부터 적용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소송은 다른 분야의 보호기간 논쟁에까지 불을 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각 단체들은 미국, 유럽과 다른 보호기간 때문에 발생하는 괴리를 지적하며 연장을 주장해오던 터였다.
일본문예가협회와 일본음악저작권협회, 일본미술가연맹 등 14개 단체는 이 달 초 발 빠르게 모임을 갖고 보호기간을 70년으로 연장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모임에서는 “최근 일본의 문예 작품과 음악 등이 해외에서도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만 보호기간을 짧게 하는 것은 문제”라는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이들은 이르면 9월 중에라도 공동성명을 발표해 문화청에 법 개정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모두가 보호기간 연장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저작권을 개방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음악문화 발전에 보탬이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70년으로 저작권을 연장할 경우 실질적인 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걱정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을 검토 과제로 삼아 온 일본 문화청은 각 단체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년 중에라도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보호기간 연장문제가 신속하게 타결될 수 있을 지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한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지적재산권 분야 3차 협상(9월초)을 앞두고 있는 한국 정부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70년으로 연장할 경우의 득실을 따져보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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