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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도서관] 정신으로서의 책과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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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도서관] 정신으로서의 책과 도서관

입력
2006.07.3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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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모여있는 곳이란 공동묘지이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납골당의 항아리같이 벽을 따라 판자 위에 늘어놓은 조그만 관밖에 없다고 불세출의 사상가 사르트르가 말했거니와, 그는 또한 망설임도 없이 책읽기를 아주 이상한 작업, 곧 귀신과의 통화라 말해 마지 않았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산 자들이 자기의 몸을 빌려주는 이상한 행위를 두고 독서라 했소. 이런 행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가 도서관이지요. 그러고 보니 도서관이란 성스러운 공간이 아닐 수 없소. 잘만 하면 정녀(貞女)들이 지키는 신전에 버금갈 터이오.

이 신전에의 접근은 두 가지 계기에 의해서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오. 신전쪽에서의 유혹과 나 자신의 혼의 갈증이 그것. 이 양쪽의 그리움이 마주쳤을 때 비로소 소망의 기묘한 대화가 하나의 결실을 이루어낼 수 있었소. 와세다 대학 서고 속에서의 한 기록과 또 그가 다닌 중학교 교지에 마주쳤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쓸 수 있었고, 구 경성제대 서고 속에 잠겨 있던 각 학과에서 낸 잡지에 전광처럼 마주쳤을 때 사람들은 도남론(조윤제)도 최재서론도 쓸 수 있었소. 누워있는 백골에 내 살이 닿자마자 백골쪽이 홍당무처럼 후끈 달아올랐다고 ‘날개’의 작가가 ‘종생기’에서 적지 않았던가.

도서관이란 새삼 무엇인가. 책이라 말해볼 수도 있겠소. 그렇다면 그 책이란 무엇인가. 종이에 검은 물감이 찍혀있는 물건. 이는 인터넷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오. 검색하고, 인용하며, 필요한 부분만을 읽는 것이 인터넷이며, 따라서 그 문장이란 투명하기 짝이 없는 정보인 까닭. 책은 그렇지 않소.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단 없이 한꺼번에 읽기가 책의 본질이지요. 그것이 정신의 영역인 까닭이오. 그러기에 불투명할 수밖에요.

중요한 것은 이 불투명함에서 옵니다. 근본적 물음에 정신이 관여하기 때문. 지도상에 나와있는 목적지를 향해감이 아니라 스스로 지도 만들기에 나아감이 정신인 까닭에 그 독도법은 원리적으로는 지도를 만든 자만이 이해할 수 있지요. 타인에겐 불투명할 밖에요. ‘소설의 이론’(루카치), ‘존재와 시간’(하이데거)이 그럴 수 없이 불투명한 것은 그 자체가 해설도 설명도 아닌 작품인 까닭이오.

도서관과 관련된 대학시절의 책읽기의 체험 한 장면을 보이고 싶소. 군복을 벗고 복학했을 때 주변엔 친구가 전무했소. 갈 데라곤 오직 도서관. 아침에 들어가 어둠이 깔려 도서관 문을 닫을 때까지 공복에다 무아경에 빠지기 일쑤였소. 그런 어느날 밖으로 나왔을 때 창공의 별이 너무도 크고 차고 영롱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정신이 투명한 적이 없었소. 조금 전에 읽은 칸트가 거기 있었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창공의 별떨기와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라는 것.

문학평론가ㆍ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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