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수해를 당한 적이 있다. 한참 잠에 곯아 떨어진 새벽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밖에서는 다급한 마음에 주먹으로 문을 쿵쿵 내려치다가 그것도 모자라 발로 차고 있었지만 빗소리가 워낙 커서 들릴락 말락했던 것이다. 몸을 일으켜 나가자마자 위험을 직감했다. 다가구주택 1층인 우리집 문턱을 타고 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여기저기 요란한 구급차 소리와 사람들의 외침도 빗소리에 묻혔다. 잠시후 거실에 물이 발목까지 찼다. 잠시 후 화장실 변기에서 오물이 역류하면서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랴부랴 귀중품을 챙겼고, 이불과 옷가지를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 잠시후 물이 안방문턱을 넘었다. 쓰레기도 밀려들었다. 다행히 수면은 더 높아지지 않았다. 물이 빠진 후 하루 종일 방안의 물을 퍼내고 닦아야 했다. 이 때부터 이부자리를 제대로 펴기까지는 20여 일이 걸렸다. 또 겨울이 올 때까지 곰팡이와 싸워야 했다.
올 여름 태풍 에위니아에 이어 장맛비로 온 나라가 물폭탄을 맞았다. 특히 강원지역은 융단폭격을 받은 것처럼 폐허로 변했다. 양양 오색에 살고 있는 친척 한 분도 피해자다. 1억원도 넘게 들여 마련한 지하 음식점이 대목을 앞두고 물에 모두 잠겨버렸다. 가재 도구가 물에 잠기고 휩쓸려 가는 것을 보는 마음은 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재산 피해도 피해지만 장사를 못하니 생계가 막막하다고 한다. 오색의 상징인 오색약수터와 주전골 탐방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끊겼던 도로와 통신시설 등을 긴급 복구했지만 관광지로서 모습을 다시 갖추기까지는 최소 6개월이 걸린다니 그동안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자립도 최하위권인 강원도로서는 수재민 지원이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총 피해액은 1조5,000억원에 이르고, 복구비는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도는 궁리 끝에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3일 중 하루는 자원봉사하고 이틀동안 휴가를 즐겨달라는 '3ㆍ1ㆍ2 운동'을 펼치고, 강원관광정보사이트(www.gangwon.to)를 개설해 여행코스를 추천하는 등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속초시도 수도권 일원을 중심으로 명동거리 일대, 동대문ㆍ남대문시장 주변에서 피서객을 붙잡기 위해 홍보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다행히 얼마 전 오색약수의 수맥이 다시 발견됐다. 톡 쏘는 맛이 더욱 강해졌고 양도 더 많다고 한다. 또 조선시대 가짜엽전을 만든 장소로 알려진 주전(鑄錢)골 동굴까지 발견돼 주민들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5년 전 수해를 당했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구호금품을 받았다. 쌀 10㎏에 휴대용 가스렌지, 이불과 요, 돗자리, 라면 1상자, 12만원짜리 하나로마트 상품권 등…. 두 달 뒤 추석 때에는 위로금으로 100만원 정도 나왔다.
문제는 피해가 막심해도 지원금은 비슷하다는 것.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수재민들에게는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다. 수해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되는 이달 관광객들이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지자체들도 열일을 제치고 관광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수재민들을 위해서라도 올해 휴가만큼은 수해 현장에서 보내면 어떨가.
최진환 사회부차장대우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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