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흘린 피값을 받을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9ㆍ11테러 1년 뒤인 2002년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미 국무부 부장관은 워싱턴의 포럼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복안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자살특공대는 1983년 10월23일 6톤의 폭약을 실은 트럭을 몰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던 미 해병대 사령부 건물로 돌진했다. 241명의 미군이 숨졌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했다. 아미티지의 말은 헤즈볼라 등에 대한 ‘보복의 기회’를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 들어가 20일째 헤즈볼라 거점을 공격하고 30일 카나 참사가 발생했어도 미국이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유엔 등을 무시하며 이스라엘 편들기를 계속하는 까닭을 아미티지의 말에서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은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의 대리전 성격이 강하다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9ㆍ11 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테러집단과의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부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9ㆍ11 테러를 자행한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와 직접 관계없는 중동의 헤즈볼라, 하마스 등과 같은 무장단체를 동일시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현재의 중동전은 새로운 중동을 낳기 위한 진통”이라는 언급도 부시 독트린에 따른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프리즘으로만 중동문제를 파악하고 있다.
한 프랑스 외교관은 “미국이 헤즈볼라를 계속 알카에다와 동일시한다면 부시 독트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잃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임도 “부시 독트린을 계속 밀어부친다면 중동위기를 타개할 유용한 외교적 수단을 점점 잃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부시 독트린에 묶여 헤즈볼라 후원자인 시리아를 활용하는 외교를 포기, 중동은 여전히 미궁 속을 헤매고 있다. 96년 이스라엘_헤즈볼라 전쟁 때 워런 크리스토퍼 당시 미 국무장관이 헤즈볼라 후원자인 시리아와 이란을 넘나드는 ‘왕복 외교’로 휴전을 이끌어낸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타임은 꼬집었다.
미국의 이런 자세로 오히려 아랍권의 반미 감정만 높아지는 등 역풍을 맞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줄곧 “(중동) 평화는 증오와 공포라는 테러리스트들의 이데올로기를 이겨야만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테러리즘은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수단이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시대는 왔지만 미국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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