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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비운의 '그리운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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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비운의 '그리운 금강산'

입력
2006.07.3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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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다음날, 뒤늦은 금강산 관광 길에 올랐다. 더러 친북 좌파로 몰리며 화해와 포용을 되뇐 입장에서는 화해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마저 위협하는 위기국면에 북한 땅을 처음 밟는 게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북한에 적대적이거나 무심한 이들이 금강산 구경은 먼저 즐기는 아이러니를 내심 비웃은 탓인가 싶었다.

볼품없이 왜소한 북한군과 헐벗은 산야, 피폐한 삶의 모습 등 흔한 인상기를 새삼 되풀이할 건 없겠다. 금강산의 맑고 고운 자태는 더 이를 나위가 없다. 그보다 군사분계선에서 금강산 온정각에 이르는 동안 먼저 눈길이 간 것은 현대아산이 골프장을 만든다는 야산 중턱에 보란 듯 펼쳐놓은 방사포, 다연장 로켓 발사대였다.

● 자존심 지키려는 북의 헛된 위세

지금껏 ‘서울 불바다’ 위협의 주역 노릇을 하는 물건이 신기해서가 아니다. 금강산 관광 전용도로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세워둔 트럭 위의 방사포는 대공 위장막을 건성 둘러치긴 했지만 애초 숨길 뜻이 없는 듯 했다.

해안을 향한 것으로 보아 상륙하는 적을 막기 위한 것일 터인데, 공군 대지사격 훈련장처럼 훤히 트인 경사면에 세워둔 것은 공습이나 함포에 무방비로 내놓은 것과 같다. 실제 군사목적과 상관없이 관광객들에게 견고한 방어태세를 흩트리지 않는다고 시위, 선전하는 듯 보였다. 사진촬영엄금 경고가 무색했다.

해금강 관광코스 옆의 해안포대도 비슷했다. 8인치 자주포보다 조금 작은 해안포 2문은 모든 포를 터널에 감추고 있다는 얘기와는 딴판으로 위장 가리개도 없이 노출돼 있었다. 그 앞바다에 낡은 대형 초계함 1척이 떠있는 모습도 어색했다. 북한 해군에서 가장 큰 1,000톤급 함정이 그토록 해안 가까이 머무는 것은 초계목적보다 위세를 과시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겉 모습만으로 북의 군사 태세를 섣불리 얕잡아 볼 건 아니다. 다만 내 느낌이 엉뚱하지 않다면, 금강산을 개방한 마당에 굳이 어설픈 시위를 하는 사정을 헤아려 볼만 하다. 관광 대가를 얻는 게 절실해 비경(秘境)을 열었지만 마냥 궁하고 힘없는 처지는 아니라고 알리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천박하게 비유하면, 다 떨어진 자존심이나마 지키겠다고 애쓰는 듯 했다.

이런 안간힘은 어찌 보면 내부단속에 무게를 둔 것이다. 남쪽이야 미사일 사태로 온통 시끄러워도 노인네와 어린이까지 동반하고 금강산 관광에 나서는 마당이니 북이 핵이든 뭐로든 위협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리 선전 선동에 갇힌 북쪽 주민이라도 그 자존심 지키기가 헛된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다. 백만 명을 훌쩍 넘긴 남쪽 관광객이 몰려 다니는 광경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과 감회를 가졌겠는가. 마을마다 할 일 없이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민들의 몰골에서 핵과 미사일 위협을 떠올리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북한이 금강산 수입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쏟아넣고 있으니 관광을 중단해야 한다는 이들은 물정 모르는 감상주의라고 욕할 것이다. 그러나 금강산 주변 북한의 모습을 목격한 눈에는 북이 가졌다는 핵무기와 대포동 미사일도 초라하게 비칠 뿐이다. 그걸 갖고 실제 누굴 위협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변변한 군용차량도 굴리지 못하는 처지에 얼마나 대단한 전투력을 숨기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 금강산 관광에 담긴 순수한 염원

이런 안보 불감증을 개탄하는 이들은 나름대로 애국충정을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동족상잔을 겪은 고루한 촌로들도 분단의 질곡 속에서 수없이 떠올렸던 북의 위협에 관심 갖기보다 생전의 금강산 구경에 감동하는 변화를 되돌리려는 시도야말로 개탄스럽다.

나라 밖에서 더 요란하게 떠든 미사일 위협이 과장된 것으로 드러난 상황에도 강경론을 허물긴 어렵겠지만, 근근이 이어온 금강산 관광까지 겨냥하는 것은 맹목적 증오를 표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분단극복의 염원을 담은 ‘그리운 금강산’의 노랫말까지 북쪽 귀에 거슬리지 않게 바꿔 부르며 화해와 교류를 반긴 순수한 마음을 짓밟는 것은 이기적 죄악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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