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는 국민임대주택 벨트인가? 수도권의 허파구실을 하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국민임대주택으로 바뀌고 있다. 2002년 이후 그린벨트 가운데 임대아파트 지구로 지정된 면적은 수도권에서만 무려 1,200만평, 전국적으로는 2,000만평에 이른다. 임대주택 100만호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는 "비용과 접근성 측면에서 땅값이 싼 수도권 그린벨트를 활용할 수 밖에 없다"고 명분과 고충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자체와 주민들은 "그동안 보존돼온 그린벨트를 정부가 앞장서서 훼손하고, 그 절차도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 주민·지자체 입장/ 정부가 녹지훼손에 앞장 "무신경 땜질개발"
“대한민국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지난해 안양 관양지구 임대아파트 지구지정에 강력 반발했던 신중대(59) 안양시장은 건교부를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신 시장은 “관양지구는 인구밀도 3위인 안양이 보유한 유일한 자연부락”이라면서 “단 한곳 남은 개발가능지를 빼앗아가면 지자체는 무엇을 하란 말이냐”고 성토했다. 신 시장은 “국민임대주택건설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단체장의 허가 없이 임대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주민들이나 단체장이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2002년 특별법 제정이후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내 그린벨트에 지정된 국민임대주택단지는 모두 33곳으로 면적만 무려 1,197만평. 올해 안에만 11개 지역, 280여만평이 지정됐거나 지정될 예정이다. 전국적으로는 49개 지구에 1,680만평으로 이 가운데 71%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셈이다. 또 정부는 2020년까지 수도권에만 3,900만평이 단계적으로 풀겠다는 방침이다.
남양주시 별내와 고양시 삼송지구가 각각 154만평에 달하고 수원시 호매실 94만6,000평, 시흥시 장현 88만6,000평, 의정부시 민락2지구 79만4,000평 등이다. 인천 가정지구 40만평 등 서울, 인천에도 9개 지구나 있다. 이들 지구에는 앞으로 임대주택 10만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그린벨트 개발방안에 대해 경기도와 일선 자치단체, 환경단체 등이 이구동성으로 반발하고 있다.
안양시의 경우 지난해 동안구 관양동 17만7,000평이 임대주택단지로 지정되자 시장과 시민들이 수개월동안 강력한 반대투쟁을 벌였다. 시흥지역 환경단체는 시흥 장현, 목감지구의 경우 보존가치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훼손하고 있다며 반대성명을 발표했고 화성시의회도 비봉, 봉담2지구 등에 국민임대주택을 잇따라 건설하는데 대해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경기도도 내심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임대주택 건설이 시작되면서 그린벨트 훼손행위를 단속하기가 어려워졌다”면서 “아무리 임대주택 짓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고 토로했다.
경기 시장군수협의회는 그린벨트 임대아파트 건립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임대아파트를 수도권에 집중건설하는 것은 인구분산이라는 측면에 맞지 않고 ▦그린벨트 훼손에 차별을 둠으로써 형평성에 위배되며 ▦외진 곳에 아파트를 건설해 놓고 버스 등 기반시설부담은 지자체에 맡겨 사회복지비용을 지자체에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의회측은 “30여년간 주민들의 희생을 담보했고 지금도 행위제한을 하고 있는 그린벨트를 정부만이 마음대로 훼손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심각한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면서 “이번 조치는 수도이전을 통한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정부정책과도 상반되고, 분양이 보장되는 수도권에만 지어 정부 실적만 맞추려는 즉흥행정의 표본”이라고 비난했다.
안양시 관양동 주민 김모(58)씨는 “임대아파트 건립반대를 주민들의 님비(NYMBYㆍ지역이기주의)로 몰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면서 “30여년간 합당한 보상을 기다린 주민들로부터 땅을 빼앗아 가는데 가만 있으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주민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아파트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지자체와 주민들이 공감하는 한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 건교부 입장/ 비용·접근성측면 불가피 "계획개발 온신경"
“국민임대주택 건설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그린벨트 해제와 개발은 어느 정도 불가피합니다.”
그린벨트 보전과 주택문제 해결이라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하는 건교부는 훼손이 어느 정도 진행된 그린벨트에 임대아파트를 건립, 녹지훼손 최소화와 저소득층 근로자의 주거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건교부가 그린벨트를 임대주택 부지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국민임대주택 목표물량은 100만호로 확대하면서부터. 부족한 택지확보를 위해 전체 100만호 중 20만호를 그린벨트 해제지역에 건설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고, 임대료 지불능력과 대중교통 등을 고려하다 보니 수도권과 대도시 인근이 임대아파트 부지로 집중됐다는 설명이다.
건교부는 우선 정부의 이 같은 조치로 그린벨트가 무차별 훼손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밝히고 있다. 엄격한 기준을 정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있는 데다가 계획적 개발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환경을 덜 파괴한다는 논리다.
실제 국토연구원 등에서는 환경훼손 정도에 따라 그린벨트에 1~5등급을 부여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중 환경훼손 정도가 심한 4,5등급 지에 한정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있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1급지는 없으며 2급지가 일부 포함될 경우 철저히 원형을 보존하거나 대체녹지를 확보해 훼손은 우려만큼 심하지 않다”면서 “계획 개발을 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을 수 있어 환경보전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건교부는 또 국민임대주택이 들어설 경우 지역이 슬럼화하고 기피지역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반박하고 있다.
건교부 국민임대주택건설기획단 김기선 사무관은 “지역 슬럼화 우려는 국민임대주택과 영구임대주택의 차이점을 알지 못한 데서 나온 오해”라면서 “영구임대주택의 대상인 기초생활수급자 보다는 보증금을 낼 능력이 있는 도시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주변지역까지 덩달아 슬럼화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관은 “이 같은 우려를 하고 있는 분들에 대해 국민임대주택 건설 예정지를 한번 찾아볼 것을 권고하고 싶다”며 “내년에 입주가 시작되는 의왕ㆍ청계지구 같은 곳은 누구라도 입주해서 살고 싶을 정도로 환경이 좋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 지역의 효율적인 활용 측면에서도 국민임대주택 건설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그린벨트가 해제된다 해도 친환경적인 시설만 건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접 개발할 경우 일부 부유층의 호화 별장 등이 주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보다는 국민임대주택단지를 건설하는 것이 토지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 낫다는 것이 건교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또 주민들에게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보상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래의 토지용도를 반영, 보상가를 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지역주민들의 지구내 재정착을 위해 거주자를 대상으로 이주자택지 및 이주자용 아파트 입주권을, 토지소유자를 대상으로 협의양도인 택지를 우선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생활터전을 상실한 영농자 및 영업자에게는 생활대책으로 일정규모의 상업용지를 공급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권병조 건교부 국민임대주택건설기획단장은 “국민임대주택 건설은 주택문제 해소와 함께 주거복지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리는 중요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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