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들이 자신이 보유한 3%대 지분으로 7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휘두르면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사→B사→C사→A사’ 식 환상형 순환출자와 금융회사 고객자금의 계열사 출자를 통한 후진적 그룹 지배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출총제 폐지 여부와 대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의 또 다시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한 자릿수 지분과 무한권력’ 여전
공정거래위원회가 30일 발표한 ‘2006년 대규모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정보공개(4월1일 기준)’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41개 기업집단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은 5.04%에 불과했다. 이중에서도 ‘재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산 6조원 이상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 14개는 총수 일가 지분이 3.67%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특히 출총제 대상그룹들은 총수 일가가 단 1주만 가지고 있는 계열사가 60.9%에 달했다.
이에 따라 총수 일가가 소유한 지분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지 보여주는 의결권승수는 출총제 대상그룹이 7.47배, 상호출자제한 대상그룹 기준으로 6.71배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1년 전과 비교해 별 개선이 없는 것이다. 작년에 이어 출총제 대상으로 지정된 9개 재벌의 의결권승수는 8.57배에서 8.61배로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한편, 총수일가 지분이 낮은 그룹은 삼성(0.85%), SK(1.05%), 하이트맥주(1.60%), 현대(2.18%) 등의 순이었고, 의결권승수가 높아 소유지배 왜곡이 심한 곳은 동양(21.08배), SK(16.42배), 한화(12.53배), 두산(11.62배) 등의 순서였다.
환상형 순환출자로 지배력 유지
환상형 순환출자는 순환출자 중에서도 가장 악성이다. 총수가 A사에 500억원을 출자한 뒤 이 500억원이 ‘A→B→C→A’ 식으로 한바퀴 돌면 1,500억원의 가공자본(架空資本)이 생긴다. 총수의 권력이 지분이 하나도 없는 B, C사에 까지 미치면서 주주의 이해와 충돌할 수 있는 것. 공정위에 따르면 출총제 대상 14개 재벌중에 11개가 이런 식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의 경우 ‘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화재→삼성전자’ 등 6개의 환상형 순환출자고리로 얽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금융계열사를 통한 그룹 지배도 여전했는데, 총수가 있는 4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금융 계열사가 있는 기업집단이 23개이고, 이중 13개 소속 26개 금융사가 76개 계열회사에 출자하고 있었다. 계열사에 대한 평균지분도 12.40%로 나타났다. 고객의 자산으로 총수의 지배권이 보장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출총제 폐지 시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될 전망이다. 공정위가 지난 해에 이어 정보공개를 통해 자체적인 개선을 유도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번 주부터 출총제 논의를 본격화하는 민관 합동 ‘시장경제선진화 태스크포스’에서 출총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대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출총제 조기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재계ㆍ여당과 또 한번 충돌이 예상된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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