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최정상급이었다. 하지만 ‘페스티벌’로서는 아쉬웠다. 28~30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한국 록 페스티벌의 가능성과 숙제를 동시에 던졌다.
# 행사장 진흙탕… 이벤트 부족… 축제 의미 퇴색
행사 초반 폭우가 쏟아진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번 페스티벌에는 연인원 2만여명이 몰려들었다. 이런 열기에 보답하듯 스트록스, 블랙아이드피스, 플라시보를 비롯한 국내외 30여 개 팀은 연주 실력은 물론, 무대 매너 면에서도 최상의 공연을 펼쳤다.
첫 날 메인 무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미국 록 밴드 스트록스의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는 공연 도중 서태지와아이들의 ‘우리들만의 추억’을 불렀고, 29일 무대에 오른 힙합 밴드 블랙아이드피스의 리더 윌 아이엠은 공연 내내 ‘Korea’를 소재로 유쾌한 농담을 건네고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는 등 멋진 팬 서비스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CD와 똑 같은 라이브’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 실력을 자랑하는 영국 록 밴드 플라시보도 명성에 걸맞은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28일 공연한 영국 밴드 스노우 패트롤은 탄탄한 연주력과 한 편의 영화처럼 기승전결을 갖춘 절묘한 선곡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켜 공연 후반 모든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광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그러나 주최측의 운영은 밴드와 관객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폭우로 인해 행사장 전체가 진흙탕이 됐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공연장 주변에 깔린 약간의 천과 돌들 뿐이었다. 관객들은 신발이 진흙으로 범벅이 되자 곳곳에 쓰레기가 널린 행사장을 위험을 무릅쓰고 맨발로 걸어 다니기도 했다. 게다가 세면 시설은 캠핑 존을 포함해 단 세 곳에 불과, 수천명의 관객들이 공연이 끝날 때마다 한참을 걸어 세면장으로 가 발을 씻고, 다시 공연장으로 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연 스폰서 업체의 홍보 부스나 음식점은 가득했지만, 관객들이 공연 사이사이 시간을 보내며 즐길 만한 거리가 전혀 없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아내와 일곱 살 난 딸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온 김건(35)씨는 “아이를 데리고 모든 공연을 다 기다리며 볼 수는 없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만한 시설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해외 유명 록 페스티벌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관객 중 상당수는 10년 여년 록을 즐겨온 30~40대였지만, 그들은 더 이상 ‘열정’이나 ‘록 스피릿’이라는 이름으로 불편을 무조건 감수하지는 않았다.
폭우가 쏟아진 28일 스트록스의 공연에는 객석 뒤쪽이 듬성듬성할 정도로 관객이 적었고, 29일에는 블랙아이드피스의 공연이 끝난 뒤 힘들다며 숙소로 돌아가는 관객들이 많았다.
28일 공연한 넥스트의 리더 신해철은 폭우를 뚫고 온 관객들에게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좋다. 이런 팬들 때문에 음악을 한다”고 말했지만, 관객은 넥스트의 단독 공연보다 적은 몇 백 명 선이었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요즘 록 팬들이 유명 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무슨 고생이든 감수하는 ‘헝그리 정신’의 마니아가 아니라 쾌적한 환경과 좋은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로 바뀌었음을 보여준 셈이다.
록 페스티벌이 1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록의 부활을 이끄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려면 관객 편의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철저한 기획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객원 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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