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강원 정선군 무릉2리, 해발 650㎙의 고랭지 배추 밭.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한 시간 째 허리를 90도로 숙인 채 김을 매고 있었다. 반백의 수염이 무성한 그의 얼굴은 수십 년 농사를 지었다는 마을 이장보다도 더 진한 구릿빛이었다.
손 전 지사는 500평 남짓한 밭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야 허리를 쭉 펴면서 “내 손이 낫보다 낫지 않느냐”며 껄껄 웃었다.
이날은 손 전 지사가 ‘100일 민심 대장정’을 시작한 지 3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그간 충북 단양과 강원 인제의 수해복구 현장, 강원 삼척의 탄광 등을 누비며 온몸을 땀으로 적셨다. 탄광에서는 탄가루를 마셔 가며 채탄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는 왜 ‘여의도 정치’를 떠나 민심 기행에 나섰을까. 그는 먼저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체험하기 위해서도, 구도(求道)를 위해 나선 것도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어렵지만 순박한 국민들 속에 사는 자유로움이 오직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그는 밤 11시가 돼서야 강원 사북의 한 허름한 펜션에 짐을 풀었다. 짐이라 봐야 작은 배낭 하나와 노트북, 일주일치 속옷이 들어 있는 가방이 전부다. “맥주나 한 잔 하자”는 손 전 지사와 마주 앉았다. 그는 무좀이 골치라면서 발가락 사이사이에 휴지부터 말아 끼웠다
지난 한달 동안 정치 얘기만 나오면 “일이나 하자”며 손사래를 쳤다는 손 전 지사였지만 이날은 한두 마디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3%를 맴돌던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거의 5% 까지 오른 게 화제가 됐다. 그는 “두 자릿수가 되면 몰라도 올라 봐야 새 발의 피 아니겠나”며 웃어 넘겼다. 그는 “대장정을 시작할 땐 국민에게 완전히 잊혀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요새는 언론 노출이 오히려 거추장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지율을 더 올리는 방안에 대해선 “비책도, 걱정도 없다”고 했다.
그런 대답이 공허하게 들린다는 물음에 손 전 지사는 “팬(fan)의 정치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고 강조한 뒤 “실사구시(實事求是)가 벽에 걸린 액자로만 남지 않도록 정치를 바꾸기 위해 한바탕 큰 씨름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정계개편 문제가 나오자 그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의 컴백이 정계개편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묻자 그는 “지금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웃기는 것”이라며 “의석 하나 가지고 정계개편을 말하는 우리 정치가 너무 냄비 정치”라고 일축했다. 그는 “억지로 정계개편을 하자는 것은 결국 서로 정권을 잡자는 것이지, 사회에 기여하는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손 전 지사는 당내 소장파가 7ㆍ11 전당대회에서 고전한 것을 두고 “그들이 114명을 모았다 뭐다 했지만, 결국 세 불리기나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라며 “전당대회 결과는 분명 당심(黨心)과 민심이 반영된 것이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당 대선후보 경선 룰 변경 논란에 대해선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고 짧게 답했다. 경선 방식이 어떻든 나의 길을 가다 보면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는 “어쨌든 이전의 손학규 틀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선ㆍ사북=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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