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람들이 잘 쓰는 표현 중에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있는데 어느 것부터 먼저 듣겠느냐"는 말이 있다. 이번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개표상황이 종료된 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를 하지 않았을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좋은 소식은 한나라당의 연승 기록이 깨진 것이고 나쁜 소식은 한나라당의 연승 기록을 깬 사람이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라는 사실입니다."
● 예측불가능 정치 보여준 趙 재기
궁금한 것은 이 같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합쳐서 총점을 매기자면 그 결과는 어떨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권 내에서도 평가는 엇갈릴 것이다.
호남 출신 의원들을 비롯해 민주당 등과 통합을 해, 반(反)한나라당연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 한나라당의 연승 기록이 깨졌고 민주당과의 합당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점에서 좋은 소식 쪽에 비중을 더 둘 것이다. 아니 적극적인 통합론자들은 열린우리당이 승리한 것보다 나은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며 화장실에서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따르며 민주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직계 세력들과 영남권 정치인들의 경우 최악의 상황이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연승은 어차피 진행되어온 기정사실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탄핵의 주역이자 민주당과의 통합론의 불씨가 될 조 전 대표가 승리하느니 차라리 한나라당이 계속 연승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처럼 조 전 대표의 승리로 열린우리당의 내부 갈등의 불씨는 더욱 커지고 말았다.
조 전 대표의 이번 승리는 역시 정치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원칙을 지켜온 조 전 대표는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당선된 뒤 인기가 바닥을 기면서 후보교체론에 시달리고 있을 때 노 대통령 옆을 지키며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일등공신이다. 그러기에 노무현 정권 초기만 해도 조 전 대표가 일년 뒤 노 대통령을 앞장서서 탄핵을 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조 전 대표는 현 열린우리당의 지도부들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았고 결국 노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거센 국민들의 분노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모두들 조순형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조 전 대표는 그러나 탄핵 2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탄핵에 분노해 광화문을 메운 국민들의 함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조 전 대표가 다시 부활할 수 있으리라고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한화갑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지도부조차도 조 전 대표가 출마할 경우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은 탄핵당이라는 이미지를 상기시킨다며 그의 출마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었다.
물론 그의 당선이 탄핵이 정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탄핵을 주도한 것이 정치적 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부정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은 실정을 통해, 조 전 대표의 정치적 재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준 조 전 대표에 진 빚을 갚은 것이다. 역시 노 대통령은 의리있는 정치인이며 조 전 대표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정을 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 盧 실정ㆍ한나라 자살골의 합작
하지만 노 대통령의 실정만으로 조 전 대표가 살아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요인은 하필 수해현장을 찾아가 골프를 친 한나라당의 자살골이다.
이제 여유도 생긴 만큼 탄핵의 공범으로 함께 고생한 조 전 대표를 배려해 일부로 악수를 둔 것인지 모른다. 이 점에서 조 전 대표의 재기는 의도했든 아니든 한나라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처럼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조순형 구출 연합대작전을 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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