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아기양/엘리자베스 쇼 글 그림ㆍ유동환 옮김/푸른그림책 7,500원
‘다르다’는 ‘틀리다’와 다르지만, 우리는 흔히 이를 혼동한다. “너와 난 틀려” “걘 우리와 틀려.” ‘너’와 ‘나’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언어생활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나 태도에서도 그런 예를 본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해버리는 일, 틀린 것을 옳게 바로잡듯, ‘다른 것’을 억지로 나와 같게 만들고자 하거나 아예 외면해버리는 태도. 그게 차별이다. 빈부의 차별, 외모의 차별, 행동의 차별, 인종 민족 이념 종교의 차별…. ‘왕따’의 뿌리도 그 틀린 생각에 닿아있다.
알프스 산자락의 양치기 개 ‘폴로’는 ‘까만 아기 양’이 영 못마땅하다. 다들 눈처럼 흰데 녀석만 까맣고, 게다가 생각도 많아 혼자 엉뚱한 곳을 헤매 다니기도 한다. 폴로는 양치기 할아버지에게 녀석을 팔아버리자고 조른다. “양들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요! 제멋대로 생각하고 까불다가는 언젠가 큰 사고를 칠 거예요.”
어느 날 알프스 산의 날씨가 심술을 부려 느닷없이 큰 눈이 내린다. 할아버지와 폴로는 급히 집으로 피신하고, 우왕좌왕하는 양들 틈에서 까만 아기양의 진가가 드러난다.
산 속을 헤매다 봐 둔 동굴로 양 식구들을 인솔해 피신시키고, 다음 날 할아버지가 눈 속에서 양떼를 쉽게 찾도록 동굴 앞에 서 있고, 또….
‘다름’의 가치를 이해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열면, 우리 주위의 많은 ‘까만 아기양’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 주변의 모든 닮은 것들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우리 마음 속의 ‘까만 아기양’을 만날 수도!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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