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생사불명 야샤르' 웃기지만 웃지 못할 통제 국가의 현실풍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생사불명 야샤르' 웃기지만 웃지 못할 통제 국가의 현실풍자

입력
2006.07.28 23:54
0 0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 장편소설/'생사불명 야샤르'

“풍자는 세계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말한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1915~1995). ‘제이넵의 비밀편지’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등의 동화로,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그의 장편소설 ‘생사불명 야샤르’(푸른숲ㆍ1만2,000원)가 출간됐다.

그는 통쾌한 작가다. 그의 글은 늘 불의와 거짓을 향해 시퍼렇게 날이 서 있기 때문이다. 권위와 권력을 조롱하고, 소수와 약자를, 또 그들의 저항을 흔들림 없이 옹호한다.

그리고 그는 유쾌한 작가다. 문학의 험난한 지향을 그는 웃음의 동력으로 이끌고 간다. 적당한 과장과 넉넉한 재치, 그리고 정곡을 파고드는 냉철한 지성, 그의 글에서는 냉소마저도 따듯하다. 소수와 약자를 향한 사랑이 있어서다.

하지만 그의 문학을, 달리 말해 웃음과 사랑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삶과 그의 조국 터키의 현실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그는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였다. 번역자인 이난아씨의 소갯말을 빌자면 그는 작품을 발표하기 무섭게 내란 선동이나 좌익 활동의 죄목으로 수갑을 찼고, 약 250번 가량의 재판을 받았으며, 유배생활을 제외하고 5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했다. 계엄령 하에서 신문 잡지에 칼럼을 쓸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스스로 신문을 발행하고 출판사를 만들기도 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입을 추진중인 그의 조국 터키는 지금도 국가모독죄 규정(형법 301조)을 두고 있는 드문 국가다. 정부와 사법부, 군부, 보안조직 등에 대한 모욕행위를 하면 처벌 받고, 터키 국민이 국외에서 이를 행했을 때는 가중처벌 된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오르한 파묵이 지난해 스위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터키의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족 학살사건을 성토했다가 국가모독혐의로 기소된 사례(국제사회의 거센 비난 여론에 밀려 연초에 공소가 기각됐다)가 있었고, 최근에도 터키에 사는 영국인 화가가 터키 총리를 풍자한 그림을 그려 피소 위기에 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네신의 풍자는 문학 역사의 모든 빛나는 풍자들이 자라난 바로 그 자리, 곧 삼엄한 권력과 참혹한 현실 위에서 나고 자란 저항의 웃음이다.

‘생사불명 야샤르’는 동사무소 직원의 어이없는 실수로 호적에 전사자로 기록된 ‘야샤르’의 이야기다. 주민등록증이 없어 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하고, 군대에도 못 가고, 뒤늦게 입대는 하지만 제대를 못하고, 사랑도 잃고, 부친의 유산마저 상속 받지 못하고…, 급기야 공무원에게 대들다가 정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남자. 소설은 ‘야샤르’가 감방 ‘형님들’에게 자신이 갇히게 된 연유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주민등록증 없이 살면서 겪은, 우습지만 웃지 못하고 울자니 또 너무 우스운 ‘파란만장 인생역정 스토리’. “그날 가장 큰 실수는 (…)충고를 잊은 거였죠. 욕을 하고 싶을 때는 공공기관의 이름을 바로 대지 말고 ‘세상’으로 바꿔서 욕을 하라고. (…)어쨌든 이렇게 하면 형법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고.”(486쪽)

재갈 물린 감옥 같은 현실과, 그 현실로부터 격리된 존재들이 나누는 교감의 아이러니. 네신은 소설 결말부에 또 하나의 반전을 묻어두고 독자들을 야릇하게 웃긴다. 그 웃음은 물론 아주 복잡한 감정이 실린 웃음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