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격이다. 눈밭을 겨우 벗어났나 싶었더니 서리를 잔뜩 맞는 꼴이다. 점입가경이라며 비아냥거릴 사람도 많겠다.
김병준(52)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얘기다. 내정 단계에서부터 반대의 소리가 높았으니 눈밭에 엎쳤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을 원래 미워하는 일부 언론의 비난은 그렇다 치더라도 합리적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한 언론인조차 이렇게 썼다."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의 강성 이미지다.
교육은 국민마다 이해와 입장이 다른 만큼 설득과 조정을 통한 갈등관리가 가장 필요한 분야다. 그러나 그는 이와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므로 청문회에서 비판론을 잠재울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부총리 내정은 철회됨이 옳다. 참여정부 임기가 고작 1년 여 남은 시점에서 이런 인사로 고집 부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역시 노 대통령은 예의 "고집"을 부렸고, 청문회도 창피를 모르는 여당 의원들의 감싸기와 야당의 무능이 버무려져 "후보자가 개인적인 흠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는 식으로 "비판론을 잠재"웠다.
● 갈수록 불거지는 부적격 사유
하지만 그건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서리가 내렸는가 싶더니 뭐가 쾅 하고 덮쳤다. 그것도 불과 사흘 사이에. 먼저 제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베꼈다는 의혹으로 말하면 본인이 먼저 발표한 논문에서 아이디어를 주었고, 그 아이디어로 쓴 박사학위 논문을 인용했으니 표절이 아니고, 따라서 "부끄러운 게 없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제자의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인 셈이다. 부심 지도교수로서 표절 논문을 통과시켜 준 것은 괜찮나? 하기야 19년 전 일이라니….
그런데 본인조차 "두 말 할 것 없이 제 잘못"이라고 한 일이 벌어졌다. 이건 1999~2002년 일이다. 교육부로부터 두뇌한국21(BK21) 연구비 2억7,000만원을 지원 받고 낸 성과보고서에서 동일한 논문을 두 건의 논문으로 허위 기재한 것이다. 물론 "최종 보고서 작성시 실무자(조교) 선에서 실수를 한 것으로 안다.
연구자로서 최종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연구비를 더 타려고 일부러 부풀릴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고, 문제의 실무자가 지금쯤 어디서 울분을 터뜨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같은 논문을 제목만 고쳐 두 학술지에 싣는 것은 문제 아닌가? 다행히 그 중 한 학술지는 이미 발표된 논문을 전재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그러면'전에 어디에 실린 논문을 본 학술지의 요청에 따라 제목만 바꿔서 낸다'고 알리기는 해야지, 왜 안 그랬을까?
이 대목에서 "사람을 아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는 공자 말씀이 생각난다. 김 부총리는"과거가 아닌 미래에 관해 고민할 시간을 주셨으면 하는 간곡한 말씀을 드린다. 교육 수장으로 올 때 교육의 지평을 열어간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도와 주셨으면 좋겠다. 간절히 부탁 드린다"고 했다.
난감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자들은 사람을 별로 믿지 않는다. 좋게 봤다가 사람 그럴 줄 몰랐네 하는 경우는 많고, 좋지 않게 봤다가 알고 보니 괜찮네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 L부총리 S장관의 경우를 보라
2005년 1월 L 교육 부총리는 사퇴 직전까지도 "최선을 다할 테니 여러분들도 많이 도와 달라"고 했다. 그는 임명 전부터 너무 많은 비리로 반대 운동이 거셌다. 청와대가 감싸기로 일관했으나 그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7시간 30분이었다. 2000년 8월 교육부 장관을 24일 만에 물러난 S씨의 경우도 비슷했다."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며 버티다 결국 저서 두 권이 외국 책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져 낙마했다.
야멸차게 들리겠지만 김 부총리는 이 쯤에서 "간절한 소망"을 접는 게 좋겠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끝까지 하기에는 이미 줄이 너무 많이 풀렸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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