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급변하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가정'이다. 사회상의 변화와 맞추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고, 그 결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가족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또한 가족들의 가치관과 이념도 혁명적인 변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 냈고 아직도 민법 곳곳에 남아 있는 남녀 차별적인 요소들을 개정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혼인적령의 남녀 차별이다. 현행 민법은 남자 만 18세, 여자 만 16세로 혼인적령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남자는 경제적 책임을 지는 가장, 여자는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현모양처의 역할을 다하면 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생리적 성숙이 빠르기 때문에 출산을 염두에 두어도 만 16세면 되고, 남자는 육체적 성숙이 여자보다 늦고 사회적 ·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고교를 마치는 만 18세로 혼인적령을 정한 것인데 이러한 규정 자체가 이미 붕괴하고 있는 가부장제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므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개정할 필요가 충분하다.
문제는 남녀 모두 만 18세로 하자는 개정안에 대한 일부 반대 여론의 근거 또한 사회상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내용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출산과 육아를 염두에 두었을 때, 여자가 육체적 · 생리적 성숙이 빠르다는 것 자체가 별로 근거가 없다는 것이 최근의 학설이며, 가정 내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 규정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다.
'남자는 경제적 책임을 지는 가장, 여자는 현모양처'라는 관념으로 오늘날의 가정을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의 일차적 당사자는 물론 여성이지만, 출산과 육아는 부부 가운데 어느 일방의 책임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의식은 이미 보편화한 상식이다.
또한 이미 남성과 여성이 더 이상 각각 경제적 책임을 지는 가장,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현모양처로만 살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해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 여성 의식의 성장, 교육수준의 향상,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자는 생물학적, 정서적으로 여자보다 성숙이 더디므로 현행 혼인적령은 양성평등과 무관하다거나, 나이 어린 미혼모들을 혼인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안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혼인적령을 바꿀 수 없다는 등의 반대론은 정말 사회변동의 흐름과 시대적 요구를 조금이라도 읽은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참고로 현재 우리 사회의 평균 혼인연령은 29세이다. 지난해 남자의 평균 혼인연령은 30.9세, 여자는 27.7세이다.
또한 관례적인 남자 연상의 혼인은 줄고, 동갑의 혼인과 여자 연상의 혼인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혼인 연령은 높아지고, 혼인율과 출산율은 저하하고 이혼율과 재혼율은 증가하고 있는 등 혼인과 관련해 더욱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한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적인 혼인적령이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고, 이렇듯 불필요한 논쟁 대신 급변하는 우리 사회의 가정문제를 두고 좀더 건설적인 논의가 진전되었으면 좋겠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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