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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서리 쳐치는 비…비… 그래도 수마에 질순 없죠"

입력
2006.07.2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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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게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잠깐 갠 듯 했던 하늘이 비를 흩뿌리자 장탄식이 쏟아졌다. 28일 오전 강원 인제군 북면 한계 2리 한계초등학교. 한계 2ㆍ3리 주민 100여명은 일주일도 채 안돼 ‘임시피난처’인 이 곳으로 황망히 되돌아와야 했다.

한 폭의 수채화 같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맛비는 이날까지 다시 141.0㎜의 물폭탄을 퍼부었다. 힘겨운 복구작업으로 흉물스런 모습을 겨우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긴급대피령은 해제됐지만 주민들은 마을로 통하는 한계천의 모든 다리가 끊겨 발만 동동 구르는 등 2차 피해에 속수무책이었다.

거센 물살은 쉴새 없이 중장비가 드나들던 임시 다리와 도로를 흔적도 없이 집어 삼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린 주민들의 희망마저 앗아갔다. “비피해 우려가 완전히 사라질 경우에만 복구를 재개한다”는 당국의 발표대로라면 이들은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봐야 하는 처지다.

거듭된 악재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탓인지 주민들은 외지인의 방문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김금순(64ㆍ여)씨는 “물난리에 지쳐 비 이야기만 나와도 몸서리를 친다”며 “다들 짜증만 남아 훈훈했던 동네 인심까지 사라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비현실적인 지원 대책에는 할 말이 많았다.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정부지원금은 최대 1,400만원이 고작이다. 그것도 유실이나 완파됐을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하니 정든 터전을 다시 일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민비상대책위원장인 장봉환(60)씨는 “평생 모은 재산이라곤 집 한 채가 달랑인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그 돈으로 무슨 집을 짓느냐”고 말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내미는 온정의 손길은 수마가 할퀴고 간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특효약이다. 강원대병원 순회진료팀은 특히 반가운 손님이었다. 진료를 시작한지 한 시간도 안돼 환자가 30명을 넘어섰다.

진료팀 관계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 대부분 두통과 가슴 답답증을 호소한다”고 했다. 쌓인 응어리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세탁 구호, 급식, 의료 검진 등 자원 봉사자와 기업들의 후원 덕분에 한 시름은 놓았고, 전국 각지에서 구호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도움의 손길은 재기의 꿈을 되살리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손자 같은 군인들에게는 참 미안해. 땀 흘리며 다리도 놓아주고 흙더미도 치워주는 고생을 다했는데, 말짱 헛일이 됐잖아? 지금은 다들 넋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비만 그쳐봐. 웃음도 인심도 되찾을 거야.” 더 이상 큰 비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소식에 김진현(72)씨가 활짝 웃으며 건넨 말이다.

인제=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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