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한국인의 특성 한 가지가 있다. 한국인들과 만났을 때 이른바 '호구조사'로부터 시작되는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참견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외국인을 처음 만났을 때, 어느 나라 출신인가부터 형제는 몇 명인지,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등등을 쉴새없이 물어보곤 한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경우라면 결혼 여부를 물어보는 것은 물론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이 밝히는 것을 꺼려하는 나이에 대한 질문까지 종종 받는다. 이런 경우 자칫 대답을 회피하다가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는 까닭에, 많은 외국인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한국식 사교에 순응하곤 한다.
● '호구조사'가 두려워
나 또한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그 같은 사생활에 대한 참견을 두려워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개인적 취향이나 관심사보다는 성장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고장 난 녹음기인 양 되풀이하다 보면 나중에는 진이 빠져 약속을 잡는 일 자체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한국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 자신도 한국인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한 외국인 친구가 꼬치꼬치 사생활을 캐묻는 내게 "진단, 나한테 관심 있어?"라고 장난스레 되물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토록 싫어했던 사생활에 대한 간섭이 내 몸에 배어 버렸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생활에 대한 간섭이 늘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니다. 며칠 전 연구실에서 일을 마치고 새벽 3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막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전화를 받았더니, 전화기 저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자는 "밤 늦은 시간에 실례지만 차의 전조등이 켜져 있더라구요. 보닛을 만져보니 뜨겁길래 아직 잠이 안 드셨을 것 같기도 하고, 혹시나 차량 배터리가 나갈까 봐 차 안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드렸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미처 고맙다는 인사도 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화들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전화 건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차량 헤드라이트는 훤히 켜져 있었다. 까딱했으면 내일 아침 낭패를 볼 뻔했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텅 빈 도로를 향해 '감사합니다. 코리안'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얼굴도 모르는 한 한국인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같은 상황에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반성이 교차했다.
● 따뜻한 이웃사랑에는 감동
물론 외국에도 마음 씀씀이가 고마운 분들이야 많지만, 지나가던 안면 모를 행인이 어두운 차고 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전화번호를 굳이 찾아내 이처럼 사생활에 따뜻한 '간섭'을 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야말로 한국이 아니면 기대하기 힘든 이웃 사랑인 것이다. 이제는 그 어떤 외국인 친구가 "참견쟁이 진단아, 나한테 관심 있어?"라고 놀리더라도 당당히 대답할 것이다. "그래, 관심 있거든."
추이진단ㆍ대진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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