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년 전 일이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전세계 과학자들이 세기의 발명품을 선정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경구(먹는)피임약’이었다. 경구피임약이 왜 세기의 발명품일까? 그것은 1960년대 경구피임약이 최초로 등장한 후 여성의 삶, 나아가 인류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되짚어 보면 자명해진다.
경구피임약은 여성에게 출산을 선택 가능한 사항으로 만들어 주었다. 여성에게 신체적 자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신체적 자유는 여성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비상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즉, 경구피임약 등장은 여성에게는 일종의 혁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의학적으로도 경구피임약은 피임 뿐 아니라 각종 여성질환 예방효과가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는 약이다.
경구피임약의 작용원리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이 뇌하수체와 시상하부에 작용함으로써 배란을 억제해 임신을 막아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21일을 복용하고 7일을 쉬는 방식으로 복용을 한다. 그리고 경구용 피임약은 불임수술, 콘돔사용 등 여타 방법과 비교해도 피임 실패율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효율성을 지녔다.
경구피임약의 종류에는 복합형과 단일형이 있다. 개발 초기에는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이 모두 들어있는 복합형이 주로 나왔지만 이후 프로게스테론만으로 구성된 단일형이 등장했다.
또 각 정에 포함된 호르몬 양에 따라서도 고용량, 저용량, 극저용량으로 분류되고 있다. 용량은 실수로 약 복용을 건너뛰었을 때 임신 가능성 여부와 관련이 있다. 고용량의 경우는 실수로 하루 안 먹어도 임신 가능성이 적지만, 저용량은 하루만 안 먹어도 바로 임신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복합형, 단일형, 고용량, 저용량 중 어느 하나가 제일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에는 저용량의 경구피임약을 많이 권하는 편이지만 개인의 상태에 따라 알맞은 피임약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경구피임약의 또 다른 장점은 여러 여성질환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피임약을 3~5년 꾸준히 복용할 경우 자궁내막암이나 난소암의 위험도가 상당히 낮아진다. 또 월경량을 줄여주고 생리통을 완화시켜 주기도 한다. 이와 함께 양성 유방질환을 감소시키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며 골밀도를 개선시켜 준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일부 여성은 에스트로겐 때문에 메스꺼움, 유방통, 혈압 상승, 부종 등의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체중증가, 여드름, 기분 변화 등은 프로게스테론 성분과 관계 있다. 이러한 부작용은 각 성분의 종류와 함량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또 흡연 여성은 혈전이 생길 위험성이 높아진다든지, 간의 종양성 질환이 증가하는 위험성도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산부인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한 처방이다. 물론, 경구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경구피임약을 처음 복용할 때는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다양한 피임약 중 자신의 몸에 가장 적합하고 부작용이 없는 약을 찾아내야 한다.
특히 흡연하는 여성이나 혈전증, 간기능 장애, 고혈압, 당뇨, 천식 등 내과적 질환이 있는 여성은 이를 더욱 유념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인류의 획기적 발명품이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주 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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