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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동네의 문서 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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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동네의 문서 해결사

입력
2006.07.2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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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갑을대행사' 유리문에는 '팩스 복사 출력'이라 적혀 있다. 내가 디스켓을 갖고 가서 프린트도 하고 원고를 부치기도 하는 곳이다. 내가 인터넷을 할 줄 모르니, 그곳 주인이 부쳐준다.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데, 오토바이가 내 앞에 멈추더니 거기 탄 웬 남자가 상냥히 웃으며 인사했다. 쭈뼛거리는 내 표정을 보고 그는 민망해 하며 갑을대행사를 가리켰다. "아아!" 그제야 나는 호들갑스레 감탄사를 뱉었다.

갑을대행사는 길가 건물 1층에 있는 소박한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낡은 6인용 소파가 먼저 눈에 띈다. 그 호두 빛 소파에 누가 앉아 있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주인은 항상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바삐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돈도 되지 않는 내 일을 성가셔 하지 않고 봐준다. 이웃 영세상인이 억울한 일을 당해 찾아오면 내용증명을 작성해 주는 등 여러 가지로 돕기도 한다. 보수를 받지 않으니까, 그들이 떡도 해오고 과일도 사온다고 했다. 누군가의 답례품인 국산 땅콩 한 줌을 얻으면서 들은 말이다.

급히 보낼 원고가 있을 때 갑을대행사 유리문이 잠겨 있으면, 막막하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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