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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누비던 '모던보이'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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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누비던 '모던보이'들이 온다

입력
2006.07.2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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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7월 24일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烏瞰圖)라는 제목의 별난 시가 실렸다. “잘못 썼겠지. 오감도가 아니라 조감도(鳥瞰圖) 겠지.”

그러나 그게 맞았다. 이상하기는, 이상이라는 작가의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라는 본문은 더 가관이었다. 모던(modern) 풍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지만, 시를 이렇게까지 비약시킨 것을 독자들은 수용하지 못했다. 반응이 심상치 않자 오감도 게재는 결국 제15호에서 중단된다.

그 해 9월, 이상이 신문지상에 실은 작가의 변은 이런 식이었다. “왜 미쳤다고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 십년씩 떨어지고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내 재주도 모자라지만 게을러 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봐야 아니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너무도 당당한 이 글에 독자들은 기가 막혔지만, 이 엉뚱한 일로 득을 본 건 이상 자신이었다. 이상한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것이다.

1930년대의 조선은 모던의 낭만과, 프롤레타리아의 이념이 대립하고 있었다. 양복에 ‘네꾸다이’(넥타이)를 맨 모던 보이와, 머리를 말고 양장에 양산을 받쳐든 모던 걸이 새로운 문명과 소비문화를 즐겼다. 동시에 일제의 수탈에 맞서 새 세상을 갈망하는 의지가 분출했고,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영향으로 프롤레타리아 의식이 싹텄다. 당시 지식인들도 이 같은 구조 속에서 갈등을 겪었다.

전업작가 오명근씨의 ‘그 이상은 없다’는 당대 예술인들의 삶을 팩션 형식으로 그린, 1930년대의 초상화다. 이상을 비롯해 김유정, 임화, 박영희, 김기진, 최승희, 백석, 최정희, 이태준, 김용준, 박태원, 김환기, 노천명, 모윤숙, 김순남 등이 줄줄이 등장한다. 단, 선각자가 아닌 사리사욕을 품은 보통 인간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임화도 이상만큼이나 독특한 인물이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 박영희의 우산 아래 있던 그는, 카프의 맹원이면서도 다다이즘(Dadaism)과 감상주의에 빠졌고 영화를 한다며 폼을 잡고 배우 노릇을 했다. ‘유랑’, ‘혼가’에서는 주연을 맡았다. 때마침 김기진, 박영희가 카프의 방향을 놓고 대립하자 그는 박영희의 편을 든다. 그런 임화는 끼가 많고 여자 관계가 복잡했다. 평론가 백철은 “여자문제로 아내의 속을 태웠다”고 말한 바 있다.

무용가 최승희도 당대의 화제였다. 1929년 첫 귀국 공연에서 흰 피부와 유선형의 몸매로 경성을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그 때문에 부러움만큼이나 시기와 질투를 받고는 속이 뒤집힐 대로 뒤집혔다. ‘이럴 땐 멋진 모던 보이와 결혼하는 게 해결책이다.’ 결국 오빠 최승일이 나서 박영희로부터 문학평론사 안막을 소개받아 여동생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책은 이밖에도 자유 연애를 추구한 노천명 모윤숙 최정희, 스스로 미남이라고 폼잡고 다닌 백석의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저자는 당대의 문인을 풍자적으로 그리면서도 “그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이들을 진지하게 다룬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글쓰기에 집착하다 생긴 현상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래서 각 장마다 각주를 달아 팩트와 픽션을 분명히 구별해주고 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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