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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재보선/ 탄핵 주역이 다시 돌아왔다 '조순형 당선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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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재보선/ 탄핵 주역이 다시 돌아왔다 '조순형 당선자는 누구'

입력
2006.07.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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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주역이 정치적으로 부활했다.

26일 밤 조순형 당선자는 선거캠프에서 당선 기자회견을 갖기에 앞서 지긋이 눈을 감았다. 사연 많았던 2년여 전을 더듬는 듯 했다. 그리고 “탄핵의 정당성이 인정됐다. 저를 포함해 16대 의원들의 훼손된 명예회복의 계기가 됐다”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71세로 5선 의원을 지낸 노(老)정객의 부활이었다. 그가 지난달 초 서울 성북을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을 때만 해도 그의 재기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민주당 공천마저 불확실했다. 하지만 그는 “총체적 국가 위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봉사하겠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분위기는 이전과 많이 달랐다. ‘탄핵 주역’ 네 글자에 유권자들은 더 이상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2년 전 당신이 옳았다”며 조 후보의 손을 잡는 유권자들이 있었다. 뉴라이트 세력이 그를 지원하기 위해 지역구를 찾았고 탄핵 동지 홍사덕 전 의원도 그를 지지했다. 그가 2년전 탄핵한 노무현 정부의 연이은 실정이 노 정객 부활의 밑바탕이 됐다.

하지만 선거운동 초기 그의 지지율은 한나라당 최수영 후보의 절반에 불과했다. 추격에 한계가 있어 보였다. 선전에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경기도당 간부들의 수해 골프 파문 등 한나라당 주변에서 악재가 잇달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최 후보의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고 조 후보와의 지지도 격차는 급격히 좁아졌다. 그리고 투표 하루를 앞두고 조 후보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최 후보를 앞질렀다.

유석 조병옥 박사의 3남으로, 1981년 11대 총선 서울 성북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정계 입문한 조 후보의 별명은 ‘미스터 쓴소리’다. 잘못하는 권력이나 정치인에 대해 자주 곧은 소리를 했다.

그는 이런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2004년 3월의 노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그해 1월 노 대통령의 총선 개입이 논란이 되자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그는 “역대 어느 대통령도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선 적이 없다”며 탄핵의 칼을 뽑아 들었다. 법치에 대해 철저히 신봉해온 그는 62석의 민주당을 진두지휘하면서 당시 최병렬 대표와 홍사덕 원내총무가 이끌던 한나라당과 연대했다. 그리고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을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탄핵 이후 그의 앞에는 가파른 몰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탄핵 역풍이 몰아쳤고 민주당도 백척간두에 섰다. 그를 향해 책임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꼿꼿했다.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했다. 그는 결국 4월15일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지만 3위로 낙선했다. 민주당도 9석을 얻는 데 그치며 미니 정당으로 몰락했다. 대표직을 사퇴한 그는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으며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의 부인 연극배우 김금지씨는 “한 일에 대해 소신을 갖고 끝까지 말고 나가야 남자이고 정치인이다”고 말하며 남편을 도왔다.

“2년 전의 탄핵은 옳은 일이었다”고 계속 주장해온 조 당선자는 당당하게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그는 날카로운 눈매로 정계개편을 예고하고 있는 정국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신발끈을 다시 매고 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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