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 조순형 후보가 서울 성북 을에서 당선된 것은 범(凡) 여권의 정계 개편 논의가 급 물살을 탈 것임을 예고한다.
열린우리당은 142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계개편 주도권을 놓칠 가능성이 커졌다. 연이은 재보선 참패로, 그것도 서울에서 여당 후보가 3위에 그친 부진에서 드러났듯이 전혀 민심을 업고 있지 못한 게 드러난 탓이다. 대신 대통령 탄핵의 주역을 앞세워 수도권 진입이라는 개가를 올린 민주당이 상승세를 타면서 ‘비(非) 노무현, 반(反) 한나라당’세력 결집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란 전망이 무성하다.
조 후보의 당선은 단순한 1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 대표로 탄핵을 주도했다 퇴장한 그가 2004년 17대 총선 이후 민주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이날 “탄핵 주도세력의 정치적 복권”이라고 해석했다. 민심은 더 이상 탄핵과 탄핵 세력을 심판하지 않을 만큼 현 정권에 대한 커다란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민 컨설팅’의 박성민 대표는 “조 후보의 당선은 우리당이 정계개편의 주체가 아닌 객체가 돼버리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동시에 당내적으로는 친노(親盧)ㆍ비노(非盧) 세력간 대립, 호남 지역 의원들의 동요도 증폭될 공산이 크다. 아울러“이대론 안 된다”는 인식 아래 민주당과의 통합론,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론 등 복잡 다양한 활로모색이 이뤄지면서 당의 원심력이 강해질 것이다.
민주당은 “탄핵은 정당했음이 드러났고, 호남을 배신한 여당을 심판했다”는 논리로 반 한나라당 진영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승리가 수도권 내 호남 유권자들을 민주당 깃발 아래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를 발판으로, 민주당은 한화갑 대표가 24일 제시한 ▦열린우리당과의 당대당 통합 불가 ▦분당 세력과 통합 불가 ▦헤쳐 모여식 신당창당 등 정계개편 3대 원칙을 밀고 나갈 게 분명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한귀영 연구실장도 “우리당의 정계개편 추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조 후보의 당선은 민주당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고건 전 총리 등 외부 잠재 연대 세력과의 관계도 주도적으로 재 설정할 것으로 보여, 고 전 총리로선 이번 선거결과가 달갑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편 이날 서울 성북 을 외 나머지 3곳에선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했다. 서울 송파 갑 맹형규 후보, 경기 부천 소사 차명진 후보, 경남 마산 갑 이주영 후보가 각각 경쟁 후보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우리당은 이번 참패로 17대 국회 이후 치러진 지난해 4월과 10월 10곳의 재보선을 포함,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14연패를 당했다. 투표율은 평균 24.8%로 역대 재보선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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