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사태를 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분수령 여겨졌던 로마회의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에 즉시 휴전토록 하자”는 국제 사회의 요구에 미국이 “평화유지군을 먼저 투입한 뒤 휴전하자”고 반대해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향해 무차별 폭격이 시작한 지 3주째로 접어들며 레바논 사망자가 400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외교적 해결 노력이 실패로 끝나 상황은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연합(EU), 세계은행 대표 그리고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 등 15개 나라 대표들이 2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났다.
이 자리서 아난 총장과 대부분 대표들은 양측이 조건 없이 즉시 공격을 멈추고 레바논 주둔 유엔 평화유지군(UNIFIL) 병력을 늘려 레바논 남부의 치안을 맡도록 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라이스 장관은 그러나 이에 대해 “즉시 휴전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으며 항구적으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반대했다. 그러면서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가 무기를 버리게 하고 이 지역에 25km에 걸치는 완충지대를 만드는 동시에 평화유지군을 투입해 레바논 정부군이 자리 잡도록 도와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라이스 장관은 또 헤즈볼라를 오랫동안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와 이란을 겨냥해 “시리아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고 이란의 역할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며 “두 나라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이참에 ‘헤즈볼라-시리아-이란’으로 이어지는 반미 이슬람 시아파 세력의 씨를 말리겠다는 속내를 숨김 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나마 이날 참가국들은 레바논 남부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배치한다는 데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그 시점과 누가 참가할 지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전망은 밝지 않다.
라이스 장관은 “앞으로 수 일 내”에 평화유지군 구성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유엔 권한을 위임 받은 강력한 군대가 배치돼 평화를 가져오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국 군대를 보내겠다는 나라는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처음부터 평화유지군에서 빠지겠다는 입장이다. 호주, 브라질 등이 파병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EU 주축 나라인 영국, 독일, 프랑스는 모두 부정적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정전과 유엔 주도, 헤즈볼라의 동의 등 조건이 맞지 않으면 파병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지난해 시리아 군을 레바논에서 내쫓은 데다 이스라엘 침공을 계기로 군대를 주둔시킬 경우 “미국, 이스라엘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하비에 솔라나 EU 외무담당대표는 이들 나라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면서도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평화유지군을 주도하고,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