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44)이 2000년 KBS ‘태조 왕건’의 타이틀 롤을 맡았을 때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쌍꺼풀 진 곱상한 외모, 멜로 드라마를 통해 쌓인 이미지가 역사적 영웅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태양인 이제마’(2002)를 거쳐 지난해 ‘해신’의 장보고 역으로 발탁됐을 때도 “또 최수종이야?”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대박’이었다.
덕분에 ‘사극 전문’ ‘영웅 전문’ 연기자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9월 초 방송하는 KBS 대하사극 ‘대조영’의 주인공을 맡아 다시 갑옷을 입은 최수종은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겁다.
고구려 유민을 규합해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다, 한 발 앞서 방송한 MBC ‘주몽’, SBS ‘연개소문’, 연말 방송 예정인 ‘태왕사신기’ 등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고구려 사극들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비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각기 다른 인물을 그리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거나 “연개소문의 유동근은 ‘야망의 전설’, 주몽의 송일국은 ‘해신’,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은 ‘첫사랑’에서 호흡을 맞췄던 선후배들로 모두 대단한 근성을 가진 배우”라고 말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1년간 다른 방송이나 CF 출연을 자제하고 대조영에만 매달리겠다”는 각오를 밝혔고, “요즘 우리나라의 모습이 많이 초라해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통해 작지만 위대하고 대범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와 이미지를 되살리고 싶다”는 대목에서는 대단한 사명감까지 읽혔다.
대조영은 “제왕지운(帝王之運)을 타고 났으나 그 때문에 쫓겨 다니며 혼자서 온갖 역경을 헤쳐가는 인물”로, 작품 역시 힘있는 남성 드라마를 지향한다. 그러나 그는 “역사도 사람의 이야기이니 사랑도 있고 웃음도 있다”면서 “거란 출신 당의 명장 설인귀 역을 맡은 이덕화 선배가 초반에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연출해 웃으면서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극을 끝낼 때마다 “다시는 사극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그가 다시 사극을 택한 까닭은 뭘까. “‘해신’ 이후 드라마 출연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솔직히 다른 시놉시스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라를 세우고 한 시대를 호령하는 역할, 멋지지 않은가. 특히 대조영은 잊혀진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김종선 PD에게 “대조영이 다시 살아온다 해도 욕하지 않게 하라”는 주문을 받은 그가 왕건이나 장보고와는 또 다른 영웅의 모습을 얼마나 잘 그려낼지 궁금하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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