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8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추진중인 비공식 북핵 6자 외교장관 회동에 북한 백남순 외상의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ARF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당국이 25일 뉴욕의 대북채널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 제재를 가속화하던 미국이 ARF를 통해 대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어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아시아 유일의 지역안보 대화체인 ARF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28일 개최 예정이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북한에 대한 일종의 ‘체면 세워주기’로, 지난해 11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당사국간 대화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6일 새벽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이와 관련,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북한이 6자 회담과 관련해 아직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24일 ARF에 참여하는 백남순 외상이 6자 회담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바 있어 불참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지만, 미국의 제의를 즉각 거부하지 않고 무반응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태도변화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런 가운데 ARF 기간 동안 7자, 8자 등 보다 확대된 다자 회동도 추진되고 있다. 일각에는 9자 회동까지 거론된다. 북핵 당사국들이 북한의 대화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ARF 의장국인 말레이시아 등을 끌어들여 7자 이상의 형식으로 북핵 당사국 회동을 가질 경우 북한도 자연스럽게 응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실려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의 금융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6자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북한에게 대화 참가의 명분을 주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도 우다웨이 부부장, 말레이시아 중국대사에게 확대된 다자 회동에 참여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북한은 아직 이렇다 할 답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확대된 다자 틀은 아울러 북한이 끝내 6자 회담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도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다룰 대화 틀을 유지시키는 의미도 있다. 북한이 제외된 5자 회동 시 북한의 반발로 향후 6자 대화 틀이 완전히 깨질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즉, 북한에 6자 회담 틀을 벗어날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북핵 대화를 지속하려는 방책이다. 이 경우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와 호주, 캐나다가 참여할 것으로 보여 북한의 참가 여하에 따라 8자 또는 9자 틀이 될 공산이 크다.
ARF기간 중 북핵 당사국간 양자대화도 봇물 터지듯 이뤄질 전망이다.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이날 중국의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과 한중회담을 가진데 이어 27일 한일회담, 28일 한미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또 백남순 북한 외상과의 남북대화도 추진 중이다. 중국도 28일 리자오싱-백남순 간 북중 회담을 갖기로 하는 등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과 미사일 해법을 찾기 위한 당사국들의 접촉이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ARF에서 북핵 6자 당사국의 양자, 다자회담이 계속되는 만큼 한반도 긴장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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