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강원 평창군 대화면. 이달 중순 집중호우로 마을 전체가 고립됐던 이곳은 큰물이 할퀴고 간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 다리와 제방은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있고, 곳곳이 움푹 내려앉은 도로에는 엿가락처럼 휘어진 가드레일이 걸려있다.
끊어진 도로를 잇는 중장비 소리만 요란했던 이 마을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한국일보와 함께 수해지역 의료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양대병원 의료봉사단 17명이 그들이다. 박훈기(43) 가정의학과 교수를 단장으로 한 봉사단은 27일까지 수해를 입은 마을을 찾아 다니며 복구작업에 병원 찾을 짬이 없는 주민들을 돌볼 예정이다.
“아프지 않은 곳이 어디 있드래요? 어깻죽지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뙤약볕 아래서 물에 잠겼던 밭을 손보느라 몸이 불편한 것도 잊었던 주민들은 도회지에서 찾아온 의사들을 보자 응석받이 어린애처럼 여기저기 아픈 곳을 털어놓았다. 주민들은 무료진료를 받는 것보다 멀리서 의사들이 일부러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에 더 감격해 했다.
“아야, 주사 좀 살살 놔 줘.” “할머니, 아직 놓지도 않았어요.”
대화2리 마을회관에 마련된 임시진료소를 찾은 권선옥(78ㆍ여)씨는 손주뻘 되는 재활의학과 전공의 박종우씨에게 엄살을 부리느라 진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양쪽 어깨에 진통제 주사를 한 대씩 맞은 권씨는 “객지 있는 아들보다 낫다”며 젊은 의사의 등을 두드렸다.
무릎이 아프다고 찾아온 전계월(74ㆍ여)씨를 진찰하던 내과 전공의 이덕주씨는 뇌경색 증상을 보이는 전씨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할머니 꼭 큰 병원에 가셔서 진찰을 받아보셔야 해요”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이씨는 “노인들은 관절질환 등 거동을 불편케 하는 질병을 제외한 다른 질환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병원이 가까이 있으면 쉽게 병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박 단장은 상안미1리에서 진료가방을 풀었다. 속사천에 인접해 있는 이 마을에는 이번 수해로 집이 물에 잠긴 주민들이 꽤 많았다. 지연옥(71ㆍ여)씨는 “안방까지 물이 찰 때 너무 놀라서 아직까지 머리와 가슴이 아프다”며 “군인들이 와서 집을 고쳐주더니 이제 의사들이 병까지 고쳐주러 왔느냐”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상안미1리 박용선(53) 이장은 “평소 병원을 자주 찾던 사람들도 복구작업에 바빠 병원에 갈 수가 없는 실정”이라며 “마을로 직접 찾아와 밤늦은 시간까지 진료를 해 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창=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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