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식품 회사의 광고는 커피와 도넛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흡연자에게 카페인과 니코틴 만큼 궁합이 딱 들어맞는 짝패도 없을 것이다. 미국 인디 영화의 기수 짐 자무시 감독이 1986년부터 17년간 커피를 홀짝거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듯 만들어낸 단편 모음집 ‘커피와 담배’는 두 기호품의 중독자라면 쉬 외면할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는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대의 여유를 즐길만한 시간인 평균 9분짜리 에피소드 11개로 구성되어있다. 재료와 제조 기법, 그리고 때와 장소에 따라 맛을 달리하는 커피와 담배처럼 각 에피소드는 각기 다른 인생의 진한 향을 내뿜는다.
제목과 주요 소재로 사용된 만큼, 감독은 우선 유쾌한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커피와 담배에 경배를 바친다. 손을 덜덜 떨면서 커피를 벌컥거리는 등장 인물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의지 박약”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금연의 장점은 한 대쯤 피울 수 있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장면, “커피와 담배는 건강에 좋아”, “커피하면 담배지” 같은 대사 등은 감독의 커피와 담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영화는 특정 기호품에 대한 예찬과 농담의 단순 집합체에 그치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은 꽁초로 가득 찬 재떨이와 검은 액체가 출렁이는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그저 숨쉬듯 엉뚱한 선문답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자무시 감독은 이들 무의미한 대화 속에서 삶의 아이러니한 순간을 낚아챈다. 사람들은 친교의 수단이기도 한 커피와 담배를 함께 즐기면서도 갖은 허세와 고집, 선입견 때문에 소통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무료함과 고독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간단한 영화 기법으로 간단치 않은 주제를 설법해 온 자무시의 독특한 화법이 여전히 강한 자장을 발휘하는 작품. 빌 머레이, 로베르토 베니니, 스티브 부세미, 케이트 블랑쳇, 이기 팝, 톰 웨이츠, 스티브 쿠건 등 유명 스타들이 각 에피소드에 출연해 자신의 이미지를 변주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는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27일 개봉, 12세.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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