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팝 그룹 아바가 한때 입었던 은색 유니폼을 지금 다시 보면 향수가 느껴진다. 민망스러울 정도로 촌스럽게 보인다는 사람도 있지만, 당시엔 충격적인 전위 의상이었다고 변호하는 사람도 있다. 비틀즈의 똑같은 양복은 당시의 모든 아류 밴드를 교복 차림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YMCA’를 부른 빌리지피플은 서로가 완전히 다른 ‘직업 의상’을 입고 나와 많은 아이디어를 던져 주었다.
3인조 이상 음악 밴드의 의상은 대체적으로 유니폼이 유행하다가 서로 다르게 입는 스타일로 이동하는 반복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러나 클래식계의 연주복은 19세기말부터 거의 변화가 없다.
남자들은 연미복이나 턱시도, 일반 정장 모두 검정이 주류다. 팝스 콘서트 같은 다소 가벼운 무대에서는 하얀 색으로 바뀐다 해도 정장 스타일은 변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드레스를 자유로운 색으로 입지만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에서는 남자들과의 조화를 위해 다시 검정으로 돌아간다.
한복을 입었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나 펑키한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즐 케네디와 같은 솔로 스타들과 달리, 단체는 아직도 검정이라는 코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중의 머리 속에 클래식 무대의 연주복은 아직도 검정이다. 크로스오버 밴드 ‘본드’가 만약 정통 현악사중주를 연주한다면, 당연히 의상도 클래식하게 바뀔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파격적인 의상은 자칫 ‘정통’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새로운 시도를 생각하다가도 안전하게 검정 의상을 선택하게 된다. 또 여러 사람이 입다 보니 밸런스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아 검정으로 통일하는 게 가장 쉬운 해답일 수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 라든지 ‘왜 겉모습에 치중하나’ 같은, 이른바 내실 지상주의만으로 세상이 가득 차 있다면 포장지 산업은 누가 발전시키랴. 음악인들은 공연할 때 연주 뿐만 아니라 의상과 같은 시각적인 요소에도 심혈을 기울인다면 훨씬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클래식이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도 있고 다양한 팬들을 포섭할 수도 있다. 현재의 검정 연미복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옷은 아니지 않은가. 연주복도 나름대로 필요에 의해 변화해 온 문화적 시도의 결과물인 만큼, 더 도전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생각을 열고 다른 분야처럼 더 빠르게 발전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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