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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시조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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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시조의 날

입력
2006.07.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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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살구꽃이 필 때, 혹은 요즘처럼 시장에서 담홍색 살구를 볼 때, 문득 떠오르는 시조가 있다. 누이 이영도와 함께 남매 시조시인이었던 이호우의 작품이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 시조를 현대화시켜 보급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시인은 이병기 이은상이다. 후배 이호우는 한 차원 다르게 시조에 현대성을 부여했다. 좀더 낡은 언어를 걷어내고, 살구 열매처럼 살가운 현대적 정서로 시조를 숙성시켰다.

▦ 현대의 시조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시조 시인은 황진이다. 계간 '나래시조'가 최근 93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 1위로 사랑 받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 '어져 내일이야'와 '청산리 벽계수야'도 10위권 안에 들었다.

또한 홍랑의 '묏버들 가지 꺾어'와 이매창의 '이화우 흩날릴 제'가 2위와 4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조선 시대의 명기(名妓) 세 명이 고시조 베스트 10 중 다섯을 차지한 셈이다. 5편의 시조가 모두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파격적 에로티시즘을 노래한 것도 이채롭다.

▦ 시조시인들이 7월 21일을 '시조의 날'로 선포했다. 이 날은 100년 전 대한매일신보에 연시조 '혈죽가'(血竹歌)가 실린 날이다. '대구여사(大丘女史)'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혈죽가'는 <협실의 소슨디는 충정공 혈적이라…> 로 시작되고 있다.

한 해 전 망국에 저항하여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우리 시조시단이 이 시조를 최초의 현대시조로 규정함에 따라, 올해가 현대시조 100주년이 된다.

▦ 시조 역사 700~800년을 돌아볼 때, 현대시조 100년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존재의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도 친숙하게 기억되는 고시조에 비해, 현대시조에서는 꽤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책 출판에서 드러나는 현대시조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일본의 단시 하이쿠(俳句)에 대한 관심에도 못 미치는 듯하다.

시조는 민족 얼과 정서를 노래해온 유일한 민족문학 형식이다. 시조에 현대적 의상을 입히는 것은 시조시인과 교육자의 의무일 뿐 아니라, 국민 독자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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