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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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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방

입력
2006.07.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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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을 꿈꾸는 계절이다. 또는 그토록 꿈꾸어오던 떠남을 모두들 '결행'하고 마는 즈음이다. 될수록 낯선 곳으로, 먼 곳으로. 그런데 그것이 왜 유독 여름이라는 시즌이어야 할까는 사실 서로 묻지 않는다.

도시인에게 있어 그 각박한 일상으로부터 도피하는 일이란 굳이 때를 가릴 것 없이 늘 마음에 엉겨 붙은 숙원임에도 말이다. 이는 혹 심리적으로 뭔가 '벗어 던지려는' 인간의 욕구와 계절의 뜨거움이 맞닿으며 상승하듯 빚어내는 자극 탓일지 모른다.

● '떠남'은 심리적 상태

우리가 믿는 바 색다른 기후, 낯선 장소, 야성에 물든 육체 중심의 행위 따위가 과연 단단한 의미의 정서적 심리적 피난처란 걸 제공하기는 하는 걸까. 아마도 그것들이 한시적이란 조건을 암묵으로 내포하기에 애초의 떠남 자체가 간단히 성립되곤 하는 것 아닌가.

어쩐지 피난처나 도피처란 말은 외국어든 우리말이든 그곳에 오랜 시간을 몸담기보다는 임의의 시간이나 경험과 관련한 뉘앙스를 풍긴다. 장소의 낯설음이란 것이 어느새 친숙함으로 점점이 물들어가고 언뜻 새로운 종류의 일상이랄지라도 역시 새로운 종류의 억압을 발하는 걸 느끼게 되면서 우리는 또 다른 도피를 꿈꾸는 것이다.

그래선지 문학이 노래하는 기항지나 정박지란 말은 늘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모양이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와, 떠나옴의 홀가분함이 막연히 뒤섞인 정서로. 이쯤 되면 인간에게 이른바 떠남의 공간이란 어떤 물리적인 거리보다는 심리적인 거리가 훨씬 의미를 주고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의 주거를 설계하게 되면 나는 빼놓지 않고 전대미문의 공간개념 하나를 건축주에게 제안한다. 간단히 이름 하길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방(nothing chamber)'이 그것이다. 사실 아까울 정도로 비교적 큰 덩어리여서 그 집에 살 사람이 이 공간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크기만큼 그 의미의 무게 역시 결코 심상치 않다.

언제든 삶을 통해 도피의 심리가 가슴 그득 차오를 때면 이 여백의, 씻김의 공간으로 잠시나마 망명하라는 뜻이다. 가구도 장식도 없는, 또 그다지 안락함도 쾌적함도 배려되지 않은, 모종의 야성이 신음해대는 내부 공간이랄까.

만약 이 공간이 현실의 일정한 이미지나 분위기를 띠게 된다면 일찍부터 사는 이들에게 익숙해져버려 어느 때부턴가는 그저 잉여공간 이상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딱히 규정키 어려운 미지의 정서를 되도록 오래 유지하기 위해 이 방엔 현실의 합당한, 상식적인 공간언어나 물질언어들이 꼼꼼히 지워져있기 마련이다.

● 도시적 일상이야말로 어드벤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현대의 도시인에게 보다 이상적인 정서적 심리적 도피의 장소란 어쩌면 새로운 드라마를 제공하는 곳이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자신이 방금 떠나온, 또 되돌아가야 할 공간이 기실 흥미로운 서사들로 그득한 하나의 극적인 장소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곳일 수 있다

. 돌이켜보면 도시적 일상이란, 쉼 없이 쥐게 되는 작고 큰 성취들, 위기나 신속한 모면의 정서, 또 긴장과 억압과 이완 따위의 심리들을 번갈아 오르내리는 어드벤처란 것을.

김헌 건축가ㆍ어싸일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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