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댐 건설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충격적이다. 이런 논란이 4개월 전에만 있었어도,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는 동강을 잘 몰랐고, 지금도 모르는 부분은 여전히 많지만 그 풍경만은 깊이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환경론자와 댐 건설론자가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 국민 대부분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2000년 마침내 동강댐 건설 계획이 백지화했을 때도, 크게 기뻐할 수도 불만족해 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물 풍요국가인지 부족국가인지를 판단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다툼에서 환경론자가 승리한 것은 아주 예외적이다. 역사상 환경론자는 대부분 건설론자에게 패배해 왔다.
● 장마로 재연된 댐 건설 논란
지금 다시 강원 정선ㆍ평창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장마가 동강댐(영월댐) 건설의 미련에 불을 지피고 있다. 건설론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환경론자에겐 시련의 계절이 왔다. 동강의 운명은 왜 이리 기구한가. 물이 부족해도 동강댐 타령, 물난리가 나도 동강댐이다.
댐에는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오랜 논란 끝에 백지화한 계획을 수재를 핑계로 부활시키는 것이 낭비는 아닌가, 다른 속셈은 없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수재 책임이 환경단체에게 전가되고 있다. 건설업자와 관료들의 이런 주장은 부실한 도로공사와 하천정비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는 장치가 된다. 유실되거나 토사에 뒤덮인 도로는 대개 가파른 절개지와 경사면 부근에 있다. 배수시설을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과 산림파괴도 자연의 홍수조절 능력을 잃게 했다. 물난리의 주 원인은 댐의 부재보다 인재(人災)인 것이다.
수자원 확충과 환경보존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경우, 달리 대안이 없다면 댐 건설에 손을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동강댐 백지화 이후 물 부족국가가 아니라는 견해가 유력해졌다. 지질학자들은 단층대와 석회암 지대인 동강의 지반이 댐 건설에는 너무 허약하다고도 지적했다. 동강 댐을 건설하더라고 붕괴위험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댐 붕괴의 재앙은 상상하기도 싫다.
동강이 단층대와 석회암 지대라는 사실이야말로 축복이다. 동강을 본 적이 없던 나는 지난 4월 처음으로 그 비경을 보았다. 인간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고즈넉함과 더불어, 쓸쓸하고도 장엄하게 흘러가는 고요한 강물을 보았다. 머무는 이틀 동안 신이 내린 듯한 풍경을 볼 때마다 깊은 감탄이 마음 속에서 출렁였다.
동강은 다른 강보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으나, 기슭은 더 넓고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이 강에만 서식하는 동강비오리가 단정하고 날렵한 모습으로 강물 위로 헤엄치고, 모래톱이 끝나는 곳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자갈은 하나 같이 동그랗고 무늬가 곱다.
풍경을 감싸 안고 휘돌아 흐르는 강의 피안에는 거대한 ‘뼝대’들이 하늘을 향해 찌르듯이 치솟아 있다. 강원도 사람들이 석회암 절벽을 가리키는 방언 뼝대야말로, 산자수명한 동강 풍경의 특징이자 댐 건설에 부적합하다는 명백한 증거다.
매 계절 동강의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초여름에 다시 다녀왔다. 단풍 들고 눈 내리는 모습도 보고 싶다. 너무 감상적이라고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금강산 설악산처럼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곳만 절경이 아니다. 어느 아득하게 잊혀진 기억 속을 흘러가는 듯한 동강의 순결하고 처연한 모습도 더할 나위 없는 절경이다.
● 환경과 빼어난 비경 얘기해야
동강엔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의 종을 포함한 1,800여 종의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다. 환경운동 단체들이 댐 건설을 한사코 반대한 이런 이유 위에, 나는 동강의 절경을 보태고 싶다. 물 관리는 인간의 판단에 좌우되지만, 절경은 신이 준 선물이다.
수자원 확충은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나, 절경은 잃어버리면 영원한 상실이다. 댐 건설을 논하지 말고, 환경과 함께 빼어난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한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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