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로서 어떻게 정의하면 좋겠냐는 말이야. 침략군인지, 아니면 테러리스트인지, 간첩인지, 혹은 무기를 휴대한 불법 입국자라고 해야 하는 건지, 설마 손님이라고 부를 셈은 아니겠지?"
무라카미 류의 소설 '반도에서 나가라'는 북한 특수부대가 일본에 상륙한 상황에서 내각위기관리센터가 허둥대는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소설은 1998년 북한이 처음 대포동 미사일을 쏘았을 때 난타 당했던 일본 정부의 부실 대응 시비를 참조한 듯 하다. 올해 한국 정부에 쏟아진 비난에도 소설에 나오는 모든 각도의 비아냥이 다 들어있다.
98년을 기억하는 일본 정부는 이번엔 빠른 정보공개에 신경을 썼다. 자연히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과 비교되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은 더 거세졌다. 이때 일본의 '선제공격론'이 등장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일본의 빠른 대응이 북한을 선제공격하자는 야단법석이고 과잉대응이라고 받아 쳤다. "일본만도 못하냐"고 기세를 올리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입을 닫았다. 국내정치용 효과는 그만이었다.
선제공격론이 일본선 순항미사일이나 장거리 전폭기 도입을 생각해보자는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검토론'이라지만, 한국에서 이런 설명은 먹히지 않는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누구도 선제공격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방망이로 두들기고 있는 것 같다"고 억울해 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그와 경쟁하는 일본 정치인들도 사실상 선제공격론이라고 부채질하는 마당에 한국이 그의 해명을 들어줄 리는 없다.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낸 북한 제재 결의안 대신에 중국ㆍ러시아안과 타협한 수정 결의안이 채택되자, 일본 야당은 "미국에 이용만 당했다"고 여당을 공격했다. 한국 정치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선제공격론의 원조인 미국은 뭐라고 했을까. 백악관의 토니 스노 대변인은 "아베 장관은 헌법개정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되고 헌법 틀 내에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발언했다"고 말했다. 패전국 일본은 방어만 하고, 반격은 승전국 미국이 전담하는 미일동맹을 만든 미국에게는 좀 엉뚱한 논쟁이었나 보다. 뉴욕타임스는 일본 정치인들의 목표는 북한 경고가 아니라 국내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국내정치용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도 북한 문제가 국내 정치쟁점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개발도 미사일발사도 막지 못했다며 클린턴 정권처럼 직접 대화를 안 해서 그렇다고 비판한다.
공화당 보수 강경파는 부시가 외교해법을 앞세워 북한이 도발한 것이라며 강경하게 나가라고 아우성이다. 한미일 3국의 국내정치와 3국간 외교가 시끄러운 것은 북한 문제가 각국 정치에 깊이 들어와 있는데다가 야단법석을 피할 수 없는 민주정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23일 아베 장관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외교적으로 연설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남북간 대화가 한국민들에게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수사를 잊지는 않았다. 같은 날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가 미국과 대화하려는 정치적 의미라고 일찌감치 읽어낸 독해력을 지닌 한국 관계자들은 그 독해력을 가끔은 미일에도 써보면 안 되는 것일까.
신윤석국제부장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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