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에 어린이 도서관이 들어섰다. 빈 터에 도서관 예정지라는 플래카드가 걸렸을 때 식구들은 밥상머리에 앉아 새로 지어질 도서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붉은 벽돌이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도서관의 모양새를 상상하곤 했다. 다 지어졌을 때의 모습이 그 상상에 턱 없이 못 미쳐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상상하는 동안 즐거웠다. 개장하는 날 다섯 살짜리 조카를 데리고 오빠가 도서관에 갔다 왔다. 조카는 내게 자기 사진이 박힌 도서관 회원증을 보여주었다. 그 회원증을 들여다보다가 꼭 한번만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적에, 나는 한 번도 도서관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도서관을 간 게 언제였더라? 중학교에 다닐 적, 학교에서 도서관을 지었다. 1학년 때는 도서관이 지어진다는 소문을 들었고, 2학년 때는 공사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들으면서 수업을 했다. 도서관이 지어졌지만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만을 따로 모아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켰다. 나는 가끔 도서관에 들러 책들 사이를 아무 생각 없이 걷기는 했지만, 걷다 멈추어서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기도 했지만, 책을 꺼내 읽지는 않았다.
그 무렵 친구에게 헤밍웨이의 책을 빌렸다. 그 책을 내 방, 장롱과 벽 틈 사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읽었다. 할머니의 코고는 소리를 들어가며. 책 한 권을 다 읽고 시계를 봤더니 새벽 두시가 넘었다.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랬더니 아침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밤을 샌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장롱과 벽 사이의 공간. 나는 그곳을 나만의 도서관이라고 불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어도 여전히 도서관에는 가지 않았다. 나에겐 나만의 도서관이 있었으니까. 그 도서관에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궁금해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곳에서는 책을 읽기 보다는 공상을 하길 더 즐겼다. 할 수만 있다면 잠도 그곳에서 자고 밥도 그곳에서 먹고 싶었다. 그곳을 빠져나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공공 도서관에 정을 붙이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제야 아! 조금만 일찍 도서관을 사랑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길을 잃을까봐 늘 두려운 나이에 길을 잃어도 좋을 만한 공간은 세상에 오직 하나, 도서관뿐이었다. 그러나 길을 잃을까봐 두려운 나이에 나는 도서관이라는 곳을 몰랐다. 도서관에 갔다 온 것을 마치 놀이동산에서 놀고 온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조카가 부러웠다.
어린아이가 된 나는 도서관에 간다. 자리가 비좁아 앉을 곳이 없다면 그냥 도서관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책꽂이 맨 위에 있다 해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을 것이다. 까치발을 해서 손가락 끝에 간신히 만져지는 책 등. 책을 꺼내지 못한다면 손가락으로 책 등을 간질이듯 쓰다듬어 줄 것이다.
정말이지, 다시 아이가 될 수 있다면, 단 한번만이라도 도서관에 가서 그렇게 해보고 싶다.
윤성희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