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안연(顔淵)은 이름이 회(回)로, 아버지 안로(顔路)와 더불어 부자가 모두 공자의 제자였다. 스승보다 서른 살이나 어렸으나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칠 정도로 뛰어나, 가히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 이를 만 했다.
이에 따라 공자도 제자 가운데 으뜸으로 여겨 총애했으며, 그가 젊은 나이에 죽자 하늘이 자신을 버린다고 애통해 했다. 그 뒤 위정자들이 유능한 제자를 천거하기를 청하면, 안연이 죽어 더 이상 훌륭한 인물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 안연이 후세에 길이 이름을 남긴 것은 유교적 선비의 이상인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실천한 데서 연유한다. 공자는 "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 누항(陋巷)에 살면서도 늘 즐거워하니, 어질도다 안회여!"라고 칭송했다.
당시 빈민들과 마찬가지로 누추한 거처에서 대그릇에 담은 밥 한 그릇(簞食)과 물 한 표주박(瓢飮)으로 끼니를 이으며 그들의 어려움을 보살피는 덕행을 지속한 것을 기린 것이다. 이처럼 단사표음과 안빈낙도는 단순히 청빈한 생활에 자족하는 게 아니라, 빈민구제 등 백성의 삶을 돌보는 데 앞장서야 하는 선비의 도리를 일컫는다. 선비는 오늘날에는 정치인이다.
■ 지루한 공자 말씀을 길게 한 것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수해 골프'등 잇단 경거망동을 사죄하면서 어려운 문자를 쓴 것이 눈에 띄어서다. 강 대표는 "살얼음을 딛는 것 같다"(如履薄氷)며, 일일삼성(一日三省)하고 단사표음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석 달 열흘 현충일처럼 근신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 좋은데, 이 와중에 유식한 고사성어와 재기 발랄한 비유를 떠올리는 것이 오히려 여유롭게 느껴진다. 공연한 트집이 아니라, 이럴 땐 좀 쉬운 말로 해야 진솔하게 들을 게 아닌가 싶다.
■ 대학생 딸아이는 "군대 간 친구들은 수해 복구에 삽 자루 휘두르느라 외출도 못 나온다는데 골프채나 휘두르고…"라고 분개했다. 친구들과 떠들다 얻어들은 절묘한 비유를 자랑 삼아 옮기는 듯 했다. 그러나 강 대표의 고사성어 실력자랑이 '단사표음'에 이르자 내심 질린 듯, "웃겨!" 한 마디로 비웃고 말았다.
더 넓은 계층에 다가서겠다는 강 대표와 한나라당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안연은 "국가경영의 기본가운데 으뜸은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이 믿고 따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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