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양(瀋陽)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머물러온 탈북자 3명의 미국 행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꽁꽁 얼어붙은 북미 관계를 더욱 냉각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5월 동남아를 경유한 탈북자 6명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 이들을 수용한 바 있다. 따라서 또다시 탈북자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미국의 이번 결정은 미국이 2004년 제정한 북한인권법의 적용을 확대하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5만~30만 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탈북자들의 마음을 동요시켜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탈북자들을 자국 영사관에 받아들인 미국이 미묘한 시점에 이들의 미국행을 성사시킨 정황이다. 미사일 발사 사태 이후 북한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미국이 북한을 전방위로 압박해온 점을 감안할 때 탈북자들의 미국 행은 그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20일 “지금은 북한을 더욱 압박해야 할 때”라며 미국은 북한의 체제 변화가 아닌 북한의 체제 변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북한의 체제 변형을 위해서는 핵, 미사일, 재래식 전력(戰力) 뿐만 아니라 인권문제 등과 같은 이슈를 함께 제기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헬싱키 프로세스’도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대북 압박에 반대해온 중국 당국이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시점에 탈북자들의 미국행에 동의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자국 내 외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에 대해 통상 1~6개월 후 제3국 행을 허용해왔던 중국의 관행에 비쳐보면 이번 미국행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북 압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국이 자칫 북중 관계 훼손까지 초래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물론 외국공관 진입 탈북자들의 한국행의 경우 제3국을 반드시 경유토록 해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이번 탈북자들의 경우 미국으로 직행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이중잣대가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선양 탈북자들의 미국행은 중국에서 은신 중인 많은 탈북자들에게 적지않는 자극이 될 것이다. 주중 미국 공관뿐 아니라 주중 제3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이 미국행을 요구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 사태 발발 이후 대북 경제 제재 방안 등 여러 압박책을 검토해온 미국이 탈북자 문제라는 예민한 인권문제부터 건드렸기 때문에 북미간 감정은 크게 악화할 것이 틀림없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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