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10인 미만 소기업의 가입이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등 실적이 매우 부진하다. 국민연금 외에 노후보장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저출산ㆍ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가 퇴직연금 도입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후 6월 말까지 퇴직연금 가입 건수는 전달에 비해 29% 증가한 1만314건을 기록했다. 1인당 1건으로 계산되는 개인형 개인퇴직계좌(IRA) 241건을 제외하면, 1만93개 기업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셈이다. 그러나 이중 10인 이하 사업장이 주로 도입하는 기업형 IRA가 7,154건(69.4%)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이를 제외한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도 건당 평균 가입자 수가 25명에 불과했다.
퇴직연금제가 소기업 위주로 확산되는 이유는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퇴직연금의 사외적립금을 전액 손비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법인세가 절감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대기업 근로자들은 퇴직금을 떼일 염려도 적고 연말 소득공제 한도도 개인연금과 합산해 주어지므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담당자는 “기업이 법인세 감면혜택을 위해 퇴직연금제를 도입하려 할 경우, 이를 사측에 유리한 사안으로 여기고 노조가 다른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종전 퇴직금제의 사외적립 형태인 ‘퇴직보험’ 사업자인 보험사들이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보험사의 퇴직연금 영업 실적은 금융권 전체 적립금(1,458억원)의 21%인 305억원에 불과했다. 은행이 992억원(68%), 증권사가 160억원(11%)의 실적을 올렸다. 퇴직연금제 도입 초기, 32조원의 퇴직보험 수탁액을 보유한 보험사가 가장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던 전망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퇴직보험의 경우 확정금리형 상품으로만 운용하면 되지만 퇴직연금은 주식투자 등 사업자의 운용 능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보험사가 퇴직보험 가입업체의 연금제 전환을 꺼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퇴직연금제는 저출산ㆍ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시급히 도입해야 할 ‘발등의 불’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근로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고 기존 퇴직금제의 사내적립금에 대한 손비 인정 혜택을 줄이는 등 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병행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5월 중 퇴직연금 사업자인 은행, 보험, 증권사를 대상으로 현황과 애로사항을 들었다”며 “조만간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최근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설계를 위한 컨설팅 비용을 정부가 지원키로 했고, 기업의 노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확정급여형(DB) : 나중에 받을 연금총액이 미리 정해져 있는 형태. 불입금의 60% 이상 사외적립 의무. 기업이 운용 책임을 짐.
*확정기여형(DC) : 나중에 받을 금액이 불입 기간의 운용 성과에 따라 달라지는 형태. 불입금 100% 사외적립 의무. 근로자가 운용 책임을 짐.
*개인퇴직계좌(IRA) : 개인형은 이직이나 퇴직금 중간정산 시 받은 퇴직금을 은퇴할 때까지 퇴직계좌에 넣어 관리하는 것. 퇴직 소득세 연장ㆍ감면 혜택이 있음. 기업형은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기업의 퇴직연금규약 작성 의무가 면제됨.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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